역사가로서의 시인, 시인으로서의 역사가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

by yoonshun

원작

Charlotte Brontë, “Jane Eyre”, 1847(Penguin Classics edition, 2006).


콘퍼드의 유고 에세이집 “쓰여지지 않은 철학(The Unwritten Philosophy and other essays, 1950)”의 편집을 맡은 거스리는, 책의 서문 역할을 하는 ‘회고록(Memoir)’에서 스승이자 동료였던 콘퍼드를 ‘역사가’이자 ‘시인’으로 칭한다. 나아가 그가 고대 그리스 연구에서 훌륭한 ‘역사가’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시인’이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독자 입장에서 고전 연구자이자 학술적인 글의 저자로만 생각해 온 콘퍼드에 대해 느닷없이 ‘시인’이라니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잘 와 닿지 않는 부분이었지만, 그가 실제로 시를 쓰는 사람이었는지의 여부와 별개로 “천체의 음악”을 비롯한 에세이에 반영된 ‘정서적’ 접근에 더해, 서구 고대 사상과 근대 영국 문학 사이를 연결하는 집요한 시도같은 것들도, 바로 그를 ‘시인’이라 부를 수 있었던 정체성 중 일부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보게 된다.


마침 거스리의 회고록에서 자주 언급된 “종교에서 철학으로”를 다시 꺼내 읽어보는 과정에서, 맨 앞에 적힌 헌정사(To Francis Darwin)가 눈에 띄었다. 콘퍼드가 “이 책을 어느 과학자(a man of science)에게 헌정한다”고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하기도 했던, 프란시스 다윈(1848-1925)은 콘퍼드의 아내(Frances Cornford, 1886-1960)의 아버지, 말하자면 장인어른이다. 놀랍게도 프란시스 다윈의 아버지는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1859)”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고, 콘퍼드의 아내이자 찰스 다윈의 손녀 프란세스 콘퍼드는 20세기 영국에서 명성있는 시인이었다고 한다. (이 가족 구성원들 중에는 이름이 비슷한 이들이 많아서 각각 미들네임을 포함한 이니셜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편으로 콘퍼드(1874-1943)는 버지니아 울프(1882-1941)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옥스퍼드 클래식(Oxford World's Classic) 시리즈의 에세이집에 수록된 연대표에 따르면, 울프는 20대 초반이던 1897년에 킹스칼리지에서 그리스어와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몇 년 후에는 본격적으로 그리스어 개인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리스어를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On Not knowing Greek, 1923)"라는 에세이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을 영어라는 한정된 언어로만 접하게 되는 현실의 한계를 논의하기도 한다. 케임브리지를 거점으로 하는 대학교수였던 콘퍼드와 달리 울프는 런던을 중심으로 교외 지역을 오가며 활동한 문인이었지만, 두 사람이 남긴 저작들에서는 각각 20세기 전반기 영국의 지식인들이 고대 그리스를 바라보던 관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콘퍼드가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얻은 한편으로, 버지니아 울프 역시 여러 편의 시를 남겼고, 다수의 에세이를 통해 문학에서의 '시'의 가치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문학을 이루는 기본 틀이 시의 형식이었던만큼, 영국 문학 전통의 흐름에서도 정교한 운문의 형식과 기법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맥락에서 “제인 에어(Jane Eyre, 1847)”의 작가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 1816-1855)의 시인으로서의 면모가 소설 작품에 반영되는 방식에 대해 논의한 울프의 에세이(“Jane Eyre & Withering Heights”, 1916)도 참고해 볼만한 부분이다. 같은 글에서 울프는 샬롯의 여동생인 에밀리(Emily Brontë, 1818-1848)는 언니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시인이어서, 그의 작품인 “폭풍의 언덕(1847)”을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 평한다. (미즈무라 미나에水村美苗가 “폭풍의 언덕”의 배경을 전후 일본으로 옮겨 창작한 『본격소설本格小説』(2002)도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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