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으로 놓치게 되는 원문의 잔재미

나츠메 소세키, “산시로” (1908)

by yoonshun

夏目 漱石、『三四郎』、 角川文庫、1951。(2022、159刷)


夏目 漱石、『三四郎』、新潮文庫、1948。(2022、159刷)


웬만한 출판사에서는 다 출간되어 있을 듯한 소세키의 소설이지만, 서점의 문고판 서가를 훑다가 랜덤?으로 두 권을 골랐다. 처음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어서 한 권만 사려다가, 일단 표지 디자인부터 다르기도 하고, 책 뒤에 붙은 해설도 각각 다른 사람들이 썼으니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에. (원작은 1908년(메이지41년) 『아사히신문』 9월1일자부터 12월29일까지 연재된 이른바 ‘신문소설’이다.)


본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신초판에서는 한자어를 그대로 쓰는 반면, 카도카와판에서는 많은 한자어들을 히라가나로 풀어놓았다는 점이다. 한글전용을 원칙으로 하게 된 우리말에 비하면 일본어에서는 한자의 비중이 크다고 생각해 왔는데, 의외로 요즘에는 의도적으로 한자를 덜 사용하는 편집을 지향하는 출판사들도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인 ‘산시로(三四郎)’의 한자 표기는 본문의 여러 숫자들과 얽히며 시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스물 세 살(二十三年)의 산시로가 대학 입학을 위해 고향인 쿠마모토에서 도쿄로 향하는 기차에서 신경쓰이는 다른 승객의 눈을 피하려고 가방 속에 스물 세 권(二十三冊)의 다른 책들과 함께 들어있던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논문집 23쪽(二十三項)을 펼쳐놓고 들여다 보는 장면을 비롯해, 12十二, 23二十三, 34三十四 같은 연속된 숫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산시로의 이름이 ‘스물 세 살에 대학에 입학해 일 년을 보내고 스물 네 살이 되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해석해 놓은 글을 어디선가 본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한국어(산시로)나 영어(Sanshirō) 번역본에서는 놓칠 수 밖에 없는 부분임은 분명하다. 여기서 또다시 미즈무라 미나에가 강조했던, ‘문학의 한 요소에 불과한 줄거리만 남게 되는’ 번역 문학의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번역된 소세키는 아무리 뛰어난 번역이라 해도 소세키가 아니다.“(日本語が亡びるとき―英語の世紀の中で, p.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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