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1951 ”유르스나르의 구두“1996
Marguerite Yourcenar, “Mémoires d‘Hadrien”, Éditions Gallimard, 1974. (초판 1951).
須賀敦子, 『ユルスナールの靴』, 河出書房新社, 2010。(초판 1996)
벨기에 출신으로 서른 중반이던 2차대전 시기 미국 동부에 정착한 유르스나르(1903-1987)는 쉰을 앞둔 1951년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에게 미국행을 권하고 일생동안 함께 살았던 미국인 여성 그레이스 프릭(Grace Frick, 1903-1979)이 번역한 영어판은 약 3년 뒤에 출간되었다.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는 프릭이 생애동안 유르스나르 저작의 영어 번역을 독점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영어 번역본의 속표지에는 원저자인 유르스나르와의 협업을 명기하고 있다.)
유르스나르보다 약 한 세대 이후 일본 효고에서 태어난 스가 아츠코(1929-1998)는 도쿄에서 가톨릭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재학 중이던 1953년 유럽으로 떠나 파리와 로마에서 공부하고 마흔을 넘긴 1971년 일본으로 귀국할 때까지 밀라노에서 지냈다. 유럽에서 보낸 젊은 날을 소재로 글을 쓰고 발표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미 환갑에 가까운 나이였다. 극히 소수의 특별 승객만이 탑승할 수 있었던 제네바행 화물선을 타고 목적지 파리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40일이 넘는 (신비로움마저 갖게 하는) 여정에 대한 회상만으로도, 그가 결코 평범한 여대생은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그는 얼마 전 창립 1백주년을 맞는 도쿄의 설비기업 “스가공업須賀工業” 가문 출신이다.)
“하드리아누스” 후반부에는 유르스나르가 이 작품의 창작과정을 기록한 메모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1930년대에 예일대 도서관에서 자료조사와 초고 작성을 하던 시기에 남긴 문장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때는 그레이스 프릭이 예일대에서 논문 준비를 하던 시기와 겹치는데 (이후 유르스나르는 이 때 작성했던 원고들을 모두 태워버렸다고 했지만) 꽤 오랜 기간에 걸쳐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을 구상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덧붙여 낯선 나라인 미국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롭-하이네만 에디션의) 그리스-라틴 고전 저작들을 자신의 모국(une patrie)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고 하는 메모는, 이 작품의 집필 동기에 더욱 설득력을 더한다.
이처럼 모국을 떠나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글 속으로 파고 들던 여성 작가 유르스나르의 생애를, 서구화라는 거대한 전환점에 있던 일본제국 출신의 스가 아츠코가 스스로에 이입하며 엮어가는 여러 편의 글을 모아 놓은 “유르스나르의 구두”는 ‘서구’에 대한 막연한 지향과 동경마저도 ‘학습’해야했던 (여전히 그렇게 해야하는) 근대 동아시아인들의 운명?을 돌아보게 한다. 유르스나르의 이름에서 “흔들리다”는 의미의 일본어 동사 ‘揺れる(유레루)‘가 떠오른다는 연상이나, 유르스나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프랑스 인형’같다고 묘사하는 일본인 저자 특유의 ‘사소하지만 의미심장한’ 표현들도 눈여겨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