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라는 악기의 재발견

사드 카하트,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by yoonshun

원작

Thad Carhart, “The PIano shop on the Left Bank: Discovering a Forgotten Passion in a Paris Atelier”, Random House, 2001. (Kindle Edition)


1970년대 중반부터 수십년 간 피아노 조율과 악기 영업에 종사한 경력을 바탕으로, 집필과 강연활동을 이어 온 카나가와 출신의 사이토 신야(斉藤信哉, 1952-) 선생은 지난 2007년 저서 ”피아노는 왜 검은색일까“(『ピアノはなぜ黒いのか』”에서 일본인들과 피아노의 첫 만남에는 우선적으로 ‘역사’가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유럽에서 여러 형태의 건반악기들을 포함해 3백년 이상 지나온 피아노의 변천사를 고려하기보다는, 19세기 후반 이른바 ’최종 진화 단계‘에 이른 결과물로서의 피아노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피아노 제조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피아노’ 역시 마찬가지로 20세기 중후반 정점에 달했던 동아시아의 피아노 대량생산 흐름 속의 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2001년 출간 이후 영어권에서 20쇄 넘게 찍어냈다는 사드 카하드의 저서는,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이라는 제목의 한국어판으로도 출간되었다. 20세기 한국의 피아노 문화에만 익숙했던 독자로서, 처음 이 책을 소개받던 당시에는 ‘유럽의 피아노 역사’를 배경으로 피아노라는 악기에 다가간다는 저자의 정서적 맥락에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1950년생의 ‘미국인’ 카하드는, 어린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마흔 살 무렵 미국생활과 직장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파리에 정착했다. 전업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자녀들의 등하교를 돕다가 우연히 발견한 (아무에게나 개방하지 않는다는) 어느 피아노 공방에 드나들게 되면서 ‘인생 피아노’를 만나기까지의 세세한 과정을 (‘현실’과 ‘픽션’의 세계를 오가며) 솔직하면서도 비밀스럽게 전개해 간다.


한편으로 저자는 미국 동부에서 피아노 레슨을 다니며 의무적으로 준비해야 했던 ‘발표회’ 무대에 거부감을 갖고 즐기지 못하던 과거를 회상하며, 일시적인 보여주기식 연주보다는 재료와 부품들의 정교한 조합으로 완성된 각 피아노의 개성있는 소리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고 강조한다. (마치 자동차나 골동품 수집가와 통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문득 “일본의 전문 연주자들을 비롯해 피아노를 잘 안다는 사람들도 정작 피아노가 소리를 내는 원리나 구조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표하던 조율사 사이토 선생의 문장처럼, 어떤 성취를 위한 상징적 도구로 임무를 수행하는 데 몰입하는동안 ‘공방’ 체험과 같은 악기 제작 과정을 이해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동아시아 피아노 연주자(또는 소비자)들의 ‘현실적’ 맥락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한중일의 수많은 클래식 음악 현장에서는 언제나 ‘본고장’ 유럽에 대한 동경과 찬사가 넘쳐나고, ‘정복’의 대상처럼 여겨 왔지만, 정작 ‘본고장’에서 그 음악들을 누가 어떻게 ‘왜’ 다루어 왔는지의 맥락을 깊이있게 알아볼 기회는 상대적으로 거의 없거나 드문 편인 듯하다. (이제라도 책을 통해서나마 어렴풋이 짐작해 가며) 오랫동안 신경쓰이던 빈틈들을 채워가 보면 어떨까 싶지만...

매거진의 이전글클래식 음악 전통의 이탈과 195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