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문학과 고전을 마주하는 태도

스가 아츠코, “소금 한 톤의 독서”

by yoonshun

원작

須賀 敦子 , 『塩一トンの読書』, 河出書房, 2003。


스가 아츠코 사후 출간된 “전집”에서 발췌한 일종의 서평 모음집 “소금 1톤의 독서”를 읽으며, 서구식 근대 교육을 받고 유럽에서 공부하면서도, 모국이 속한 동아시아의 문화와 관습에도 같은 무게를 두고 탐독해야 했던 20세기 일본인의 고된? 여정을 실감한다. 메이지 초기 한문학을 공부하며 성장하다 시대 전환기를 만나 어느 순간 영문학 전공자/교사가 되어 런던까지 건너가 분투해야 했던 나츠메 소세키의 고생담에 비하면, 약 반 세기 이후, 대기업 가문의 따님이자 가톨릭 교도였던 스가 아츠코의 이탈리아 유학과 독서 생활은 너무나도 우아하고 품위있게 기록되어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바탕에 깔려있는 서구 문화와 고전에 대한 ‘비서구인’으로서의 근본적 초조함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스가는 이탈리아 유학 중 친구에게 선물받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으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이유가 자신의 ‘그리스-로마 고전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며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대목의 한편, 메이지 시기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활약했던 소설가 타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1886-1965)의 작품을 논하며, 11세기에 처음 기록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집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현대어로 옮기던 타니자키의 작업에 관한 글에서는 ‘고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고전’이란 우선적으로 ‘서구의 고전’을 지칭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 동아시아인들 사이의 인식을 반영하는 부분이다.




일본에 이탈리아 문학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번역 소개했던 스가 아츠코를 기념하는 번역상(須賀敦子翻訳賞)도 제정되어 있을만큼, 일생동안 서구 문화와 고전 탐구를 이어 갔던 스가 선생의 궤적은, 인도계 영국인이자 미국인 작가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1967-)를 떠오르게 한다. 어린시절부터 모국어인 벵골어와 일상어인 영어의 두 범주를 오가며 “나는 번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라히리는 어느 순간 자신과 별다른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던 이탈리아 문학과 유럽의 고전을 파고들며, 인생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제2의 전혀 다른 삶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최근 몇 년 간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BC43-AD17/18)의 라틴어 서사시 “변신이야기”의 영어 번역에 몰두한다는 라히리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지내며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모국’으로 삼았다는 프랑스계 벨기에인 유르스나르의 메모와도 (맥락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통하는 듯하다.




말과 글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장 밀접하게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자 표현의 통로가 아닐까. 그 대상이 모국어이든, 외국어이든, 자기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인식하며 다가갈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고, (라히리의 말에 따르면) “외부로 향하는 것이기보다는 더욱 깊이있는 내면으로 향하는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언어나 고전을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는 과정 없이) 그저 다급한 ‘지식’으로만 접근하려 한다면 결코 이르기 어려운 단계일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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