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베커, “오케스트라”
Paul Becker, “The Orchestra”, Norton Library, 1961. (초판, “The Story of the Orchestra”, 1936)
시기를 막론하고 자의든 타의든 모국을 떠나 활동 기반을 마련하거나 타지에서 활약하게 된 인물들의 사례를 접할 때면, 무엇보다 궁금한 부분은 ’언어‘에 관련된 사항들이다. 일생을 모국어(또는 제1언어)만으로 생각하고 생활할 수 있다면 대단히 행운이고 편리하겠지만, ’다른 언어‘를 통해 경계를 넘어 입지를 확장하는 것도 (강압적이거나 불가피한 경우도 있겠지만) 고려해 볼만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파울 베커(Paul Bekker, 1882-1937)는 독일 출신의 유태인으로, 스무살 무렵 베를린 필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지냈고,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하며 베를린 주요 매체에 음악 비평 연재를 시작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극장 기획과 음악비평을 집필하던 그는 나치 집권 한 해 뒤인 1934년 뉴욕으로 망명한 뒤 뉴욕 현지 언론에 음악 비평을 기고하며 말년을 보냈다. 베커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36년 집필한 “The Orchestra”(1936)“는 그의 음악관과 역사관이 집약된 저서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는 문헌에 속한다.
서문에서 베커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일부 구절(”...all that I have to say, is, to tell you, that the lantern is the moon; I, the man in the moon; this thorn-bush, my thorn-bush; and this dog, my dog.“)을 인용하며, 독일인인 자신이 이 책을 ‘영어’로 썼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그는 이와 같은 시도를 스스로 ’모험(my venture)‘이라고 칭하면서도, ”독일어권에서 추방된 이후 새로운 친구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할 필요성“을 느꼈음을 밝힌다.
나아가 그는 ”this English, my English, and these defects, my defects.“라며, 앞서 인용한 셰익스피어 희곡의 패러디로 ’영어‘ 서문을 마무리 한다.
(참고로 이 책의 한국어판은 1989년 출간된 독일어 번역본을 원문으로 삼고 있어서, 아쉽게도 베커가 집필 당시 강조했던 ‘영어’에 관련된 맥락을 찾아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