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유통된 하루키의 저작들과 ‘뉴요커’
ジェイ・ルービン, 『村上春樹と私: 日本の文学と文化に心を奪われた理由』, 東洋経済新報社、2016.
村上春樹, 『象の消滅: 短篇選集 1980-1991』, 新潮社, 2005.
하루키의 90년대 미국 활동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산시로”(三四郎, 1908) 영어 번역자로 알고 있던 ’제이 루빈(Jay Rubin, 1941-)‘이라는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워싱턴DC 출신으로 1960년대 시카고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이후 하버드 교수로 재직했던 루빈에게 ’일본문학‘이란 주로 메이지 시대와 그 이전의 고대/근대 문학이었다. 미국에서 일본어-영어 번역이 가능한 전공자 자체도 드물던 시절, 소세키나 아쿠타가와(芥川龍之介, 1892-1927)의 작품을 번역하고 연구하며, 일본 전통예능 노能에 심취해 있던 그는 1989년 하루키 소설 번역을 시작하면서 ’살아있는 동시대 작가의 글‘을 번역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계 아내Rukako와의 협업에 대해서도 종종 언급했는데, 아내와의 만남으로 일본문학 전공을 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일본문학 전공을 계기로 아내를 알게 되었는지의 전후 관계에 대한 별도의 언급을 찾지는 못했다.)
제이 루빈은 번역서 이외에도 영어권 독자들을 상대로 일본문학에 연관된 다수의 연구서들을 발표하는 한편, 일본어로 집필한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와 나“에서는 한발 더 나아간 개인적personal 기록들과 미국과 일본 간 번역서 출간 과정의 뒷이야기들까지 (게다가 뮤지션이라는 아들 소개까지)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1993년 하루키의 보스턴 체류 시절 이웃에 거주하던 루빈이 하루키를 응원하기 위해 마라톤 현장을 찾아갔지만 야심차게 준비했던 사진 촬영에는 실패?했다는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일본어와 영어에 내재한 본질적인 차이를 다루는 과정에서 겪어온 고민들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일본의 문화청이나 고단샤講談社(1909년 설립) 같은 출판 대기업의 현지법인 주도로 진행되는 대규모 문학 번역 사업에 관한 내용들은 특히 놀라운 부분이었다. (고단샤는 지난 2016년 미국진출 50주년을 기념해 맨해튼의 뉴욕퍼블릭도서관NYPL 로비에서 성대한 파티를 진행하기도 했다.)
제이 루빈의 글에서 반복되어 언급되는 하루키의 몇몇 책들 중에서도 1993년 미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는 ”The Elephant Vanishes“라는 제목의 단편 모음집이 눈에 띄었다. 주로 1990년대 (고액의 원고료로 유명한)”뉴요커“나 ”플레이보이“ 같은 미국의 ‘고급’ 잡지에 (영어 번역과 일부 편집 과정을 거쳐) 실렸던 하루키의 단편소설 열 일곱편을 한 권으로 엮어 미국문학 출판사인 Knopf에서 출간한 책이다. 이후 2005년에 출간된 같은 책의 일본어판에는 이 책의 정체성?을 둘러싼 하루키 본인의 (역시 상당히 personal한) 서문이 실려있다.
하루키는 ‘1990년 9월 초 발행된 뉴요커’에 처음으로 자신의 단편이 (영어 번역으로) 게재된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전설이나 신화에 가까운 성지”로 여겨온 ‘뉴요커’의 작가가 됐다는 사실에 “어떤 문학상을 받은 것보다도 기쁘고”, “달 표면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이 때 하루키의 나이는 사십대 초반이었다.) 이후 약 2년 간 여러 편의 단편을 잇따라 게재한 데 이어, 1993년 초에는 신작 단편을 ‘뉴요커’에 우선 발표한다는 계약을 체결했고, 열 편 넘는 하루키의 작품이 ‘뉴요커’를 통해 (제이 루빈을 포함한 영어 번역자들의 작업을 거쳐) 공개되었다.
미국인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를 통해, 그의 작품의 일본어 번역자였던 하루키를 알게 되었다는 Knopf의 담당 편집장(Gary Fisketjon, 1954-)은 영어로 번역된 하루키의 80년대 단편을 가능한 한 모두 찾아 읽으며, “동시대 미국인 독자들이 두루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담긴 스토리”에 일종의 충격을 받고 서둘러 판권 계약을 추진했다고 한다.
이미 반 세기 넘는 서구화 과정을 거쳐 온 전후戰後 일본에서 태어나, 학생시절부터 ‘뉴요커’를 ‘성지’로 여기며 작가로 데뷔한 ‘일본인’이, 같은 시대 ‘미국인’ 독자들의 열렬한 공감을 이끌어 내게 되는 흐름은 어쩌면 필연적 결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하루키와 약간의 나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같은 40년대생인 제이 루빈이 “그의 소설에는 내가 젊은 시절 가장 좋아하던 재즈 음악이 많이 나온다”고 요약한 문장 역시 결국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여름 “뉴요커 작가 특집”으로 동경하던 현역 ‘뉴요커 작가들’과 함께 기념 촬영에 참여한 하루키는 당시의 감격을 다시 떠올리며 한탄하듯 이렇게 덧붙인다. “어째서 일본에는 ‘뉴요커’ 같은 잡지가 존재하지 않는걸까.”
**일본어 원작의 영어 번역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는 많은 부분이 편집, 수정되기도 했다는데, 특히 1992년 알프레드 번바움(Alfred Birnbaum, 1955-)의 번역으로 Granta에 실렸던 1985년작 “레더호젠’Lederhosen”의 경우, 편집자의 요청으로 이른바 ‘축약판’에 가깝게 편집되었다고 하는데, 일본어판 출간시 하루키는 이 때 공개된 영어 번역판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해 수록하는 일종의 ‘놀이’를 시도했음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