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전반기 독일을 바라보는 시선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by yoonshun

Walter Benjamin, “Einbahnstraße”, Wallstein Verlag, 2025. (초판 1927).


나치 집권기이던 1930년대 후반 가족과 함께 독일을 떠나 미국 프린스턴을 거쳐 LA에 정착한 토마스 만(1875-1955)은 미국 내 독일인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하며 나치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갔고, 1944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1947년 출간된 ”파우스트 박사“는 바로 이 시기의 결과물이다. 20세기 급격한 변화를 겪은 서구 음악사를 배경으로 ’파우스트‘ 전설을 모티프로 전개되는 ’독일인 음악가‘의 생애를 다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어도 음악사 전공자에게) ”파우스트 박사“가 갖는 상징성과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파우스트 박사”를 구상하고 전개해 가는 몇 년 간 토마스 만이 동료 문인들이나 지식인, 또한 가족들과 나눈 적극적이고 폭넓은 소통 과정이 소설 집필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수시로 동료들이나 가족들과 모여 식사하거나 파티를 진행할 때면 이제 막 완성한 원고의 일부를 낭독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내용을 손보거나 이어지는 전개에 반영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고, 이미 70대의 고령임에도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의 강연 요청에 공들여 준비하고 참여하며 당대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다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토마스 만은 ”파우스트 박사“에 등장하는 세세한 모티프와 내용 전개에 면밀한 조언자 역할을 했던 아도르노(T.W.Adorno, 1903-1952)를 비롯해 쇤베르크(A.Schoenberg, 1874-1951), 아이슬러(H.Eisler, 1898-1962), 스트라빈스키(I.P.Stravinsky, 1882-1971)와 같은 음악가들과도 가까이 지냈다. 그밖에도 루빈슈타인(A.Rubinstein, 1887-1982), 클렘페러(O.Klemperer, 1885-1973), 발터(Bruno Walter, 1876-1962)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너무나 많은 당대 유럽 출신의 연주자와 지휘자들이 미국 서부에 모여 거대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삼 놀랍다.



한편 토마스 만이 아도르노에게 선물받았다는 ‘독일 비극에 관한 책’과 함께 스치듯 언급하는 발터 벤야민(1892-1940)의 이름은, 이렇게나 화려한? 망명 공동체의 대열에 미처 합류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벤야민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마침 1928년 출간 당시의 초판본을 그대로 재현한 “일방통행로”의 팩시밀리 판본이 새로 나왔다. 히틀러와 나치가 독일을 장악하기 이전임에도, 이미 독일인과 독일사회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서른 중반의 벤야민의 시선으로, ‘세기말에서 1차대전을 거쳐 나치 집권기 이전까지의 독일’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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