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원작
夏目 漱石、『吾輩は猫である』, 新潮文庫, 2003.
제국대학의 초창기 기록이라는 점에서 "산시로(三四郎, 1908)"가 의미를 갖는다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1905-1907)"에는 그보다 더 폭넓은 관점에서 메이지 시기 후반에 해당하는 (러일전쟁과 을사조약의 시기) 1900년대 초 도쿄를 그려볼 수 있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오래 전에 생각없이 읽으면서는 크게 주목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서구화 초기의 도쿄'라는 측면에 집중해 다시 읽어 나가다 보니, 오늘날 한국의 맥락에서 더욱 유심히 살펴보면 좋을 듯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이름도 없는 1인칭 화자 ”고양이”가 살고 있는 집 주인은 영문학을 공부한 중학교 영어교사이다. 이들보다 한 세대 이전의 영어교사들이 주로 정부에서 고용한 '외국인 교사'들이었다면, 소세키 또래의 영문학 전공생들은 사실상 일본인으로서 외국어를 가르칠 수 있게 된 첫 세대에 해당하는 셈이다. 일찍이 미즈무라 미나에도 지적했듯이, 메이지 유신 직전에 태어나 과거의 관습대로 일본 전통의 시가문학이나 한문학을 공부하며 성장기를 보낸 소세키 세대 일본인들은 국가의 급격한 체제 변화와 서구화 정책에 따라 서양문명과 외국어 학습을 우선시 하는 흐름에 합류하게 되는 '대전환'의 운명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혼란을 극복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소세키 역시 (신초사 문고본 해설에 실려있듯) “일본인으로서 영어로 문학을 연구한다는 데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멈추지 못했다.
"고양이로소이다"는 영문학과 졸업 후 교사 생활을 하다가 국비 장학생으로 무려 2년 간 홀로 런던에 체류했던 소세키가 결국 대학교수 자리까지 마다하고 마흔이 다 되어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설정이 조금 다르기는 해도, 고양이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중학교 영어교사 쿠샤미(珍野苦沙弥) 선생은 여러 면에서 소세키 본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인물이다. 주변인들과의 대화 속에는 중국 고사를 비롯한 한문학 고전들과 하이쿠 같은 일본 전통 문학에 더해, 동시대 일본의 도시 생활은 물론, 고대 그리스와 로마부터 20세기 초 유럽과 영미권에 이르기까지 온갖 백과사전식 지식들이 무심한 듯 화려하게 펼쳐진다. (소설 속에서는 실제로 당시 지식인들이 집집마다 갖추고 있던 웹스터 사전이나 브리태니커 전집에 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서양식 악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악기점에서 바이올린을 구입해 독학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흥미롭다. (참고로 “고양이” 집필이 마무리 되던 시기 태어난 소세키의 장남 준이치(夏目 純一, 1907-1999)는 젊은 시절 베를린을 비롯해 동유럽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서양의 역사와 지식을 공부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너무도 익숙한 가치로 공유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독자들에게는 20세기 초에 창작된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대화들이 대수롭지 않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어 문고본에서 서양 문화나 역사, 인물에 관한 주석에 할애된 분량에 비해, 한국어판 번역본의 주석은 주로 일본관련 어휘나 인명에 치중되어 있다는 데 차이를 보인다. 그렇지만 ("산시로"와 마찬가지로) 신초사 문고본 "고양이"에서도 소설의 본문만큼이나 마치 '소세키 사전'이라 이름붙여도 될만큼 세세한 (60 페이지에 이르는) 주석들을 찾아 읽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주석 부분은 소세키 전문 연구자인 무사시노 대학의 오노 준이치大野淳一 교수가 집필했다.)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그야말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다빈치, 나폴레옹, 발자크, 칼라일 등등 이른바 20세기 '교양인의 상식'으로 통용되어온 (한때 유행하던 ‘알쓸신잡’과도 같은) '거의 모든 지식’을 아우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전에 읽었던 “소세키와 그리스도교”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인용된 내용에 따르면, 소세키 선생은 “영문학도로서 성서와 그리스 신화를 자세히 공부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너무 바빠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내며 예일대에서 불문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미즈무라 미나에 선생(1951년생)이 외국어로 문학을 공부할수록 "모국어로 읽고 쓰는 것"에 더욱 몰입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90년대 이후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자리하게 되는 과정에서, 소세키의 작품과 생애를 끊임없이 탐구했던 것처럼, 개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연대와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한 모국어의 동력은 결코 다른 가치로 대신할 수 없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다만 미즈무라 선생이 소세키의 문학을 파고들며 "오직 모국어로만 통용될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두었던 반면,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 모국어의 깊이를 지키면서도 특정한 언어를 초월하는 정서적 연대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실감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