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강의” / “아우구스티누스”
원작
加藤 信朗、『アウグスティヌス「告白録」講義』、知泉書館、2006。
Peter Brown, ”Augustine of Hippo: A Biograph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3(45th anniversary edition).
1926년 제국일본의 도쿄에서 태어나 ‘서양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쳤던 가토 신로와, 1935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다 결국에는 미국 대학 교수로 정착한 피터 브라운의 접점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놓여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두 어르신의 저작들을 다시 읽어본다.
가토 선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처음 접한 1940년대 초 중학생 시절을 돌아보며, 당시 B29 폭격기가 투하한 폭탄의 흔적이 남아있던 교내 대피소 앞을 떠올린다. 전시 체제 속에서 “그리 오래 살 수는 없을 것”이라는 심정은 그가 ‘철학’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계기이기도 했다. 전쟁 후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근간에 두며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 그의 마음 속에 ‘철학과 신앙’은 점차 하나가 되어갔다. “고백록 강의”는 1990년대 중반 도쿄의 마츠바라 가톨릭 교회에서 진행되었고, 그의 나이 여든이 되던 2006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은 2016년에 나왔다.)
가토 선생이 도쿄대 철학과를 졸업한 1950년에서 몇 해 더 지난 1956년, 옥스퍼드 역사학부에 재학 중이던 브라운 선생은 졸업을 위한 최종시험을 준비하며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시대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아일랜드 개신교도 가정 출신으로 소년 시절부터 종교를 둘러싼 현실적 갈등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그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기원을 파고들면서도, 동시에 중세 사회 문화의 기원을 담고 있던 로마제국 후기에 주목했다. 이 때의 공부는 그가 1962년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전기 집필에 착수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그가 서른 초반이던 1967년에 출간되었다.
가토 선생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대 지중해 세계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던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서구 유럽의 정신 확립‘에만 기여했다고 해석하는 데 그치기보다는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서구 세계에서 바라볼 때에는 놓치기 쉬운” 가치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브라운 선생은 아우구스티누스 연구 시기의 독서 과정을 회상하며 ”종교적 이념과 정치적 사회적 삶의 본질 사이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역사가로서 그의 생애에 중심을 이루었던 ”고대 후기Late Antiquity 연구“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과거의 한 인물과 그가 살았던 시대에 다가간 20세기의 두 연구자는 각자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떠오른 의문들을 풀어가기 위해 공부해 왔다. 특히 기억해야 할 부분은 이들아 모국어를 넘어서 고대의 언어와 동시대 다른 문화권의 언어와 문헌까지 두루 섭렵하며 특정한 관점이나 편견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옥스퍼드의 방대한 도서관 시스템을 활용하며 고문서에서 최신 간행물에 이르기까지 언제든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혜택‘을 누렸던 브라운 선생에 비하면, 가토 선생은 대학 시절 ”고백록“을 라틴어 원문으로 읽던 기쁨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잘난 체(衒い)“처럼 여겨졌을 것이라고 다소 씁쓸한 어조를 드러나는 대목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60년에 걸친 대화의 성취’이라 문구로 요약되었던 가토 선생의 책에 비해, 브라운 선생은 출간 30년이 지난 1999년에 집필한 증보판 서문에서 이 전기가 ’학문 연구의 한 시점에 있던 한 청년이 특정 시기에 쓴 기록‘임을 강조하는 부분도 비교해 볼만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