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메 칸타빌레 (1)
二ノ宮知子, 『のだめカンタービレ 6』, 講談社, 2003.
二ノ宮知子, 『のだめカンタービレ 10』, 講談社, 2004.
개인적으로 ‘근대 일본의 서양음악’, 특히 일본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 온 클래식 음악이라는 주제에 파고들게 된 결정적인 통로가 된 만화 시리즈이다.
도쿄의 어느 사립대학 음대생들의 일상과 정서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보면 우리와의 공통점 만큼이나 뚜렷한 차이점들에 이끌리게 된다
주인공 치아키는 어릴 적 빈에서 성장했고, 만화 속에서 이른바 실력 있는 또래들의 척도로 자주 언급되는 도시 역시 빈 또는 베를린 같은 독일어권이다. 그럼에도 콩쿠르 심사 중 노다메를 눈여겨 본 프랑스인 선생이 파리 음악원 입학을 권하고, 피아니스트인 아버지가 활동하는 독일어권에서 거리를 두고 싶어하던 치아키도 파리 유학을 선택하게 되면서, 스토리의 절반 이상이 파리에서 전개된다. 극 중 배경이 일본이든 유럽이든, 전반적으로 ‘서양인(백인)’들은 ‘거장’으로 설정되어 있고, 일본인 연주자들과 대등한 관계로 교류하기보다는 우러러보는 대상이 되는 장면이 많은 편이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으로 가야한다는 ‘일본’ 음대생들의 초조함이 이어지는 전반부도 다시 보니 더욱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특히 학부 졸업을 앞둔 지휘자 지망의 치아키가 본교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히 6권 중) ‘일본에 남아서 도대체 뭘 할 생각인가?’라고 단호하게 지적하는 어느 평론가의 어조도 인상적이었다. (이후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한 비행 공포증을 극복하고 유럽행을 결심하게 된 치아키를 축하하며 가족들이 외치는 “탈일본!”이라는 구호도 강렬하다.)
또 하나 눈에 띈 부분은 중반부로 접어드는 10권 즈음까지 무려 네 차례의 서로 다른 콩쿠르 장면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1) 일본 최대 규모라는 설정의 “오시우리 신문사 주최 음악 콩쿠르”,
2)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부퐁 국제 콩쿠르”,
3) 노다메가 일본에서 참가하는 (심사위원이 거의 외국인(백인)이라는 설정의) “마라도나 피아노 콩쿠르”,
4) 프랑스에 도착한 치아키가 참가해 우승하는 “프라티니 국제 지휘자 콩쿠르”까지,
끊임없는 연습과 레슨, 경쟁으로 긴장을 놓지 못하는 음대생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콩쿠르 입상이라는 타이틀이 있어야만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마치 스포츠 종목인 듯 연속해서 이어지는 콩쿠르 장면에 새삼 피로감이 들기도 한다.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 콩쿠르 현장을 배경으로 설정한 온다 리쿠(恩田陸)의 소설 “꿀벌과 천둥(蜜蜂と遠雷, 2016)”, 또는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개최 과정을 르포 형식으로 취재하며 다수의 한중일 참가자들에 주목한 하와이대 요시하라 마리 교수의 저서(ヴァンクライバーン 国際ピアノコンクール: 市民が育む芸術イヴェント , 2010)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일본인들이 주목하는 콩쿠르와 클래식 음악의 관계성에 대한 인식들에서 일련의 공통점들을 찾아볼 수도 있을 듯하다. 덧붙여 일본의 한 음악 출판사에서는 매년 “음악 콩쿠르 가이드(日本の世界の音楽コンクール全ガイド)”를 20년째 출간해 오고 있는데, 여기에는 한 해 동안 열리는 (무려 5백 건에 이르는) 주요 콩쿠르들에 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메이지 초기 일본인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초빙된 ‘서양인’ 교사들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학습’하기 시작했지만, 첫 세대의 ’서양음악 전공생’에 해당하던 당시의 일본인들은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전문 연주자와 교사로 자리 잡으며, 빠른 속도로 외국인 교사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노다메’의 장면들로만 본다면) 백 년이 훨씬 지난 2000년대에도 여전히 ‘서양인’들에 (결코 대등하다고 보기 어려운 태도로) 절실하게 의존하고 있는 모습은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2019년 개교한 줄리어드 스쿨의 텐진 캠퍼스(Tianjin Juilliard School 天津茱莉亚学院)가 점차 뉴욕의 본교를 넘어서는 클래식 음악의 ‘거점’이 되어가고 있는 듯한 현상도 ‘동아시아의 클래식 음악’이라는 주제 아래 아울러 주목해 볼만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