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메 칸타빌레 (2)
二ノ宮知子, 『のだめカンタービレ12』, 講談社, 2005.
二ノ宮知子, 『のだめカンタービレ 17』, 講談社, 2007.
한국의 음대생 관점에서 노다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본 음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구성원들의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교회’에 대한 경험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학과 모임과 기독인 모임이 거의 동일 집단에 가까운 경우가 흔한 한국의 음악대학과 달리, 노다메와 치아키를 비롯한 일본의 음악대학 학생들의 일상에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존재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12권에서) 파리 음악원에 재학하며 바흐 평균율을 연습하기 시작한 노다메가, 프랑스인 친구의 할아버지가 교회(가톨릭 성당) 오르간 연주자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학생이 될 때까지) “교회를 잠깐 둘러본 적은 있어도, 그 안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들어보지는 못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이후 크리스마스 시즌에 친구 할아버지의 오르간 연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성가대의 연습을 참관하면서, 쿠로키와 노다메는 각각 불교 계통인 (듯한)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 12권의 앞부분에서는 치아키가 파리의 데뷔 무대에서 라벨(Ma mère l‘Oye, 1911)과 타케미츠 토오루의 작품(遠い呼び声の彼方へ! , 1980)을 연달아 지휘하는데, 공연을 관람하던 치아키의 사촌동생이 “라벨 연주로 프랑스 관객에게 인사하고, 타케미츠 연주로 ‘저는 일본인입니다’라고 정중하게 소개하는” 흐름이라며 이 날의 공연을 농담삼아 해석한다. 치아키의 유학이 확정되자 ’탈일본!’을 외치며 만세를 부르던 (어머니 쪽) 가족들이 유럽에서 ‘일본인’ 작곡가의 작품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과시하려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후반부를 향해가며 17권의 중심을 이루는 에피소드는, 무대에 선 치아키가 객석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발견하며 동요하는 장면이다. 유명 피아니스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비슷한 음악가의 길을 택하게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또는 분노 같은 애증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치아키의 불안한 모습이 곳곳에서 묘사된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공유하는 ‘치아키’라는 이름이 유럽에서 활약하게 되는 아들에게 대단한 플러스 요인이 되고 있음은 모두에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찍이 유럽을 활동 기반으로 해 온 ‘아버지 치아키’는 가족과도 멀어진 만큼 모국인 일본과도 오랜 기간 거리를 두고 지내온 듯하다. (6권에서) 치아키는 빈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 자신에게 무관심하던 아버지와의 일화를 떠올리는데, 당시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일본어로 쓴) 비뚤비뚤한 필체의 메모를 집어 던지며 ’아들 이름도 한자로 못쓰나‘라고 성토하는 모습은 ‘아버지 치아키’가 오래 전부터 일본어 쓰기에 서툰 인물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단지 클래식 음악 연주나 지휘 뿐 아니라, ‘본고장’이 서양인 어떤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면, 치아키의 가족들처럼 “탈일본“과 같은 구호를 외치며 서양으로의 ‘진출’을 당연시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서양 어딘가’에 정착해 모국어나 모국을 (가끔씩만 찾거나) 아예 잊어버리더라도, ’남겨진’ 모국에서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 되며 환영받는, 이렇게나 기이한 흐름의 관습?은 일본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서구화 단계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물론 만화 속 몇 장면만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미 한 세기 넘게 반복되어 오고 있는 이 구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