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 철학자의 프랑스 음악 탐구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음악과 말로 할 수 없는 것”

by yoonshun

원작

“La musique et l'ineffable” (1961)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프랑스인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Vladimir Jankélévitch, 1903-1985)는 ’음악학자’ 또는 ‘음악철학자’로 소개되기도 한다. 언어나 문자도 아니고, 특정한 대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데다, 냉정하게 계산된 구조의 관점에만 가둬 두기에도 어려운 ‘음악’의 근원적 본성은 철학자인 그에게 일생동안의 탐구 주제가 되었다.


다만 유의해야 할 부분은 20대 시절 프라하에 체류했던 기간을 예외로 하면 생애동안 주로 프랑스 파리에 거점을 두었던 그가 주목하는 ‘음악’이란 주로 당대 프랑스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특정 음악들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음악과 말로 할 수 없는 것”에서 언급하는 주요 음악가들 역시 라벨(Maurice Ravel, 1875-1937),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 포레(Gabriel Fauré, 1845-1924)와 같은 20세기 초 영향력 있던 프랑스인들이고, 러시아인이지만 한동안 파리에서 활약했던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도 여기에 포함된다.


체코와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로 이어지는 독일어권 중부유럽에서 성장하고 젊은 날을 보냈던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은 이후 런던으로 거점을 옮긴 이후에도 자신의 연주 레퍼토리가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와 같은 중부유럽 음악에 집중되어 있음을 당당히 과시했다. 반면 러시아 음악이나 프랑스 음악은 자신이 다룰 영역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배제하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출신지역과 레퍼토리를 연결할 명분이 적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의 경우, 어떤 경로로 자신의 이른바 ‘나와바리’를 설정하게 되는지 궁금해진다. 나아가 자신의 출신 정체성을 조금 미뤄두고, 다른 문화권의 주제나 레퍼토리에 이끌리게 되는 사례에 관해 살펴보는 과정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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