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넘어서 ‘발명’에 다가갔던 미국인 작곡가 존 케이지
John Cage, ”For the Birds: in conversation with Daniel Charles“, 1976 (English version in 1981, Reprinted in 2009).
미국 LA 출신의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는 음악사에서 뿐 아니라 20세기 예술 흐름의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한 인물로 유명하다. 대학을 그만두고 유럽 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혔고, 미술, 무용,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1930년대 중반 LA에서 쇤베르크의 지도를 받던 당시, 쇤베르크는 케이지에 대해 ”작곡가이기보다는 발명가“라고 평가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쇤베르크는 1933년 나치의 집권으로 미국으로 이주했고, 1941년 시민권을 얻었다.)
쇤베르크의 언급처럼 ‘음악’보다는 더 넓은 의미의 ‘창작’에 몰두했던 케이지는 1950년을 전후해 일본인 사상가 D.T.스즈키(鈴木 大拙 貞太郎, 1870-1966)의 불교와 선 사상 강연에서 영향을 받았다. (1950년대 콜럼비아 대학을 비롯해 다수의 미국 대학에서 강연 활동을 했던 스즈키는 논쟁의 대상이면서도, 아시아 사상을 서구에 알린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계기로 케이지는 생애 동안 여러 차례의 일본 방문을 통해 ‘비서구적인 어떤 것’에 대한 깊은 관심을 확장해 갔다.
일본인 작곡가 타케미츠 토오루(武満徹, 1930-1996)의 에세이 중에는 존 케이지와의 교류를 계기로 ”스스로 당연히 부정하고자 했던 대상인 ‘일본’의 좋은 전통에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언급이 있다. (小沼純一(編)、『武満徹エッセイ選―言葉の海へ 』p.56) 그는 뉴욕필하모닉의 125주년 기념 위촉작품 ”November Steps(ノヴェンバー・ステップス, 1967)“를 비롯해, 다수의 작품에 일본 전통음악의 어법과 악기를 도입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일본에서는 존 케이지에 관한 깊은 애착?과 연구가 상대적으로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존 케이지는 1989년 교토상(京都賞 Kyoto Prize)의 사상 예술 부문 수상자이기도 하다. (교토상은 1984년 쿄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카즈오稲盛和夫(1932-2022)의 사재를 기반으로 설립된 이나모리 재단(稲盛財団)에서 제정한 왠지 기묘한? 국제상이다.)
존 케이지가 자신의 이름(Cage)에서 착안해 제목을 제안했다는 ”For the Birds(프랑스어 Pour Les Oiseaux)“는 프랑스인 음악가이자 철학자 다니엘 샤를(Daniel Charles, 1935-2008)과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1968년 영어로 진행한 이 인터뷰 시리즈는 프랑스의 예술철학 전문 저널 ”Revue d‘esthétique“에 프랑스어로 번역, 연재되었고, 1976년 프랑스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1981년에 출간된 영어판에는 이 책이 제작된 경위가 간략히 기록되어 있는데, 영어판 출간 준비 과정에서 인터뷰 진행 당시의 녹음 테이프가 분실된 사실이 알려졌고, 결국 프랑스어로 번역된 텍스트를 다시 영어로 재번역하는 ”그야말로 케이지스러운 작업(very Cagian task)“을 거쳐야 했다는 것이다.
20세기 서양음악사에서 쇤베르크가 하나의 갈림길을 개척했다면, 그와의 접점에서 또다른 갈림길을 만들어 간 케이지는 이미 ‘서양음악사’의 범주에서 멀리 벗어나 ‘서양’도 ‘음악’도 아닌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데 새삼 주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