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심 음악사와 종교음악에 관한 물음들
서양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다룬 교재나 입문서들은 주로 고대 그리스 문명의 영향과 로마 가톨릭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시작점에 둔다. ”기보법에서 다성음악까지, 서양음악의 여러 측면들은 우선적으로 교회음악 영역에서 전개되었다“(Burkholder, Grout, Plisca, 2010, p.22)는 설명은 아마도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인 듯하다. 이어서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 전해지는 종교음악(sacred music)과 그 범위를 벗어난 세속음악(secular music)을 구분지어 해설하고,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는 같은 종교음악이라도 가톨릭과 루터교 계열의 음악이 다시 나뉘게 된다.
그렇지만 정작 책장을 뒤로 넘길수록 오늘날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서양(주로 서유럽)의 클래식 음악과 중세의 가톨릭 음악 사이의 연결 고리는 점차 희미해진다. 어느 시점에는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의 경계도 중요해 보이지 않게 되고, 프로테스탄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곡가가 가톨릭 전례를 위한 음악을 작곡한 이유도 궁금해진다. 종교가 그저 하나의 선택지일 뿐인 한국의 맥락에서는, 아무리 책을 읽고 공부한다고 해도 유럽에서 강조하는 크리스트교의 오랜 역사적 의미를 짐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음악사의 곤란한 미로 속으로 진입하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그라우트‘의 음악사일 것이다. 하버드에서 음악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부터 이미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고, 교회 성가대에서 오르간 연주와 지휘 활동을 했던 그라우트의 이력은, 그가 크리스트교 전통의 서구 문화를 관통하는 음악양식(musical style)의 역사로 서양음악사를 구성한 맥락에 설득력을 더한다. 1960년 초판 출간 이래 오늘날까지 거의 반 세기 넘게 거듭된 ’그라우트 음악사‘는 후대 연구자들의 참여로 개정을 거듭해 어느새 10번째 에디션에 이르렀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서유럽 교회와 궁정, 귀족들의 클래식 음악사는 특권층에만 주목한 역사라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그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는 음악사 연구의 결과물도 다수 출간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클래식 음악사를 폐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라면 비판을 되풀이 하기에 앞서 기존 역사를 더 면밀히 들여다 보는 과정도 필요해 보인다. 가톨릭 전통의 맥락에서 서양음악사를 요약한 수잔 트리시의 작은 책은, 기존의 두껍고 복잡한 교과서 속에서 놓치기 쉬운 크리스트교 음악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VSI 시리즈의 ”종교“는 현대 한국에서의 경험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와 세계 역사의 교차점을 친절히 해설해 준다. 덧붙여 ”그리스도교, 역사와 만나다“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 비아, 2020)와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 (로드니 스타크, 2020, 새물결플러스)는 음악사 속 교회사의 빈틈을 보완하기 좋은 문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