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생 소세키와 1949년생 하루키의, 같은 듯 다른 ‘서양’
瀧井 敬子, 『夏目漱石とクラシック音楽』, 毎日新聞出版, 2018.
柴田 勝二, 『村上春樹と夏目漱石―二人の國民作家が描いた<日本>』, 祥傳社, 2011.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자와 세이지와의 대화 중 재즈를 예로 들며 음악의 리듬만큼이나 글에서도 ‘리듬’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소설을 쓸 때도 마찬가지로 “리듬이 없다면, 다음 문장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하루키의 말에 오자와 선생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며 “나츠메 소세키는 어떤가?”하고 묻는다. 하루키는 “소세키의 문장은 대단히 음악적”이라면서도, “아무래도 서양음악보다는 일본 전통의 구전문학인 ‘카타리모노語りもの’에 더 가까울 것”이고, “소세키가 서양음악을 얼마나 깊이있게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나중에 알아보겠다”고 (아쉽게도) 다른 화제로 넘어간다.
실제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 “산시로” 같은 대표작에서 일본 근대 서구화 초기의 정서나 현상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던 소세키는 생애동안 서양 클래식 음악과 그 연주 현장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여러 형태의 기록들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소세키가 들었던 베토벤 (『漱石が聴いたベートーヴェン』, 2004)”을 비롯해 일본 근대문학에 반영된 서양음악 수용 초창기의 흔적들을 연구해 온 음악학자 타키이 케이코는 소세키의 작품과 메모를 비롯한 당대의 사료들에서 서양음악에 대한 그의 호기심과 탐구 과정을 추적해 간다. 아직 레코드가 보편화되기 이전 시기에 살아간 소세키의 음악 경험은, (음반 마니아에 가까운) 하루키의 방식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유념할 부분이다.
2009년 펭귄 클래식에서 출간된 소세키의 “산시로” 영문판 서문을 집필한 하루키는 “체 게바라와 지미 헨드릭스의 시대였던 학창시절(1960년대) 일본에서 소세키는 인기가 없었고, 나 역시 외국 소설에 빠져 있느라 일본 작품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영어로) 고백’한다. (“노르웨이의 숲”(1987)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듯) ‘개츠비’나 ‘비틀즈’를 평범한 ‘일상’으로 삼으며 ‘서양인’으로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던 1960년대 일본 청년들에게는, 불과 반 세기 앞서 ‘호기심’과 ‘학습’의 대상으로 베토벤과 같은 서양 클래식 음악을 듣기 위해 분투하던 소세키 세대의 존재는 이미 대수롭지 않은 과거로 잊혀가게 된 것일까.
도쿄외국어대 교수를 지낸 문학연구자 시바타 쇼지는 근대 일본에서 ‘국민작가’로 불리는 소세키와 하루키를 나란히 두고, 이들이 각각 거대한 시대 전환기에 ‘개인주의’를 부각하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일본 사회’를 반영했다는 공통점에 주목한다. 흥미롭게도 (한편으로는 아쉽게도?) 저자는 메이지 이후 근대국가로 ‘제도화’ 된 일본의 관점에서 각 작품의 텍스트에 접근하고 있는 반면, 그 사이에 일본에서 진행된 ‘서구화’라는 주제는 별도로 다루고 있지 않다. 한편으로 이러한 태도는 어쩌면 하루키가 소세키를 그저 ‘과거’의 ‘낡은’ 어떤 대상으로 바라보던 시선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