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번역과 클래식 연주의 공통점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론과 안드라스 쉬프의 악보 해석

by yoonshun

村上春樹, 柴田元幸, 『翻訳夜話』, 文藝春秋, 2000.


András Schiff, Martin Meyer, “Beethovens Klaviersonaten und ihre Deutung. "Für jeden Ton die Sprache finden...": András Schiff im Gespräch mit Martin Meyer”, Beethoven-Haus Bonn, 2007.


소설가이면서 20세기 미국문학 번역가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와, 역시 미국문학 주요 작품들을 다수 번역해 온 도쿄대 교수 시바타 모토유키(1954-)가 1996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대담 형식의 강연 내용을 엮은 “번역야화”는 90년대 일본의 제도권 출판 번역 현황을 들여다 보기에 유용한 자료이다.


도쿄대 영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대에서 공부하기도 했던 시바타에 비하면, 이미 10대 시절부터 미국 소설에 심취해 있었다는 하루키는 별도로 영어나 영문학 관련 제도권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번역은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한다는 시바타와 다르게, 하루키는 “번역을 통해 해당 작품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소설 번역의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한다.


역으로 자신의 소설이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번역되는 경우에도, 일부 또는 대폭의 누락 부분이나 고쳐쓰기가 있다 하더라도, 하루키는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선을 긋는다. “원작자의 역할은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 끝”이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함께, 같은 음악을 서로 다른 해석으로 연주하는 피아노 연주자들의 활동을 번역가의 작업과 유사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전 작품은 여러 버전의 번역이 있는 경우가 많고, 독자들이 직접 읽고 비교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면 가장 좋다”는 하루키는 “예를 들면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토 같은 경우, 청취자가 좋아하는 연주나 해석을 각자 선택하면 되는 것과 같다”는 의견에 덧붙여 “나는 내가 번역하고 싶은 방식대로 내 나름의 번역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강조한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András Schiff, 1953-)는 2000년대 초반 ECM과 기획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음반 작업 과정을 스위스의 저널리스트 마르틴 마이어(Martin Meyer, 1951-)와 대화 형식으로 기록했다. 해석자로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원문’은 베토벤의 출신지 본Bonn의 베토벤하우스에 소장된 필사본들이다. 사소한 표기의 흔적 하나까지도 세세히 훑어 가며 창작 당시의 베토벤이 의도했을 법한 연주를 오늘날의 소리로 만들어내기까지 연주자의 이토록 집요한 노고는, 그럼에도 무대나 음반 같은 ‘결과물’만으로 온전히 전달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두 ‘마케팅’의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오늘날의 문학 번역이나 클래식 음악 연주의 현실들을 감안하면, 그저 ‘소비자’일수밖에 없는 수용자 입장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얹으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음반 제작은 피아노 앞에 앉아 마이크 앞에서 연주만 잘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녹음은 다른 예술 형식이며, 다른 종류의 테크닉을 요한다”고 했던 영국인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Stephen Hough, 1961-)의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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