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 서양음악을 공부하며 생겨난 질문들
Richard Taruskin, “Cursed Questions: On Music and Its Social Practic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20.
井上 登喜子、 『オーケストラと日本人: Orchestra and Modern Japan /Historical and Empirical Views on Classical Music』、アルテスパブリッシング、2025。
‘클래식 음악’이라는 주제를 다룬 연구서나 에세이들을 (나아가 칼럼이나 인터뷰까지도 포함해) 읽을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개인의 출신이나 정체성, 성장 배경 같은 것들이 이후의 연구나 활동의 주제와 레퍼토리 선택 같은 흐름에 적지 않은, 때로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90년대 초 언저리부터)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해 온 과정을 돌아보면, 어떤 ‘보편적 서양음악’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합의된? 듯한?) 전제에 대해, 꽤 오랫동안 별다른 의문을 제기할 계기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태러스킨의 생전 마지막 에세이집인 “Cursed Questions”에는 20세기 후반 미국 음악학 연구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그의 궤적에 더해, 주요 분야였던 ‘러시아 음악’이라는 주제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확인할 수 있다. 옛 러시아 제국에 거주했던 가족 구성원들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태러스킨은, (부모님은 이미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였고) 자신의 혈통이 러시아와는 무관한 유대계임을 강조하면서도, 박사과정 시기이던 1970년대 초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연구했던 이력을 포함해 생애동안 러시아 음악에 관한 논의들을 폭넓게 다루어 왔다. 러시아어는 물론 독일어 문헌까지 아우르며 해당 언어권 연구자들과도 교류해 온 그의 생애는 영어권 특유의 편견과 한계들에 맞서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그의 역작 “옥스퍼드 음악사”의 서문을 포함해 여러 학술대회나 음반 해설 등을 통해 여러 해에 걸쳐 발표된 길고 짧은 열 세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의 1853년작 독일어 4행시 “Zum Lazarus”가 미카일로프(Михаил Ларионович Михайлов, 1829-1865)의 러시아어 번역 과정에서 의미가 왜곡된 맥락은, 저자가 그 중 한 구절을 영어로 옮긴 “Cursed Questions"라는 표현을 이 책의 제목이자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의 역할로 제시하는 데 설득력을 더한다.
관점을 동아시아로 옮겨, 메이지 유신 이후 모든 제도와 일상의 서구화라는 전환점을 겪은 20세기 일본의 음악사를 떠올려 보면, 태러스킨 못지 않은 연쇄적인 까다로운 질문들(일종의 Cursed Questions)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 최초의 전문 오케스트라이자 NHK향의 전신이기도 한 ‘신교향악단’ 설립(1926)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에서는 여러 방식으로 이를 기념하거나 해석하는 움직임들로 분주해 보인다.
다만 최근에 출간된 “오케스트라와 일본인“의 주요 내용은, (기대와 달리) 지난 백 년 간의 ‘보고서’에 가까운 데이터 정리 형식으로 채워져 있어서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자료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아쉬움이 남는다.
태러스킨은 서구의 음악사 서술이 레퍼토리 위주의 양식 변천사 위주로 구성되면서도 그 작품들이 창작되고 존재하게 된 명분why 또는 방식how에 해당하는 설명을 시도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하물며 지난 백 년 이상 서구 음악을 받아들이며 학습하고 재현하는 과정을 거쳐오면서, 동아시아의 구성원들에게 서양 (특히, 클래식) 음악이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당위성의 영역에 존재해 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반영한 서양음악 연구, 또는 연주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오래된 과제인만큼 풀어가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