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의 전기를 읽으며 묻는 서양음악사와 종교개혁
Peter Marshall, “The Reform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 (2nd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25.
Alan Walker, “Franz Liszt: The Final Years, 1861-1886”, Penguin Random House, 1996.
영국 출신의 음악학자 앨런 워커(1930-)는 잉글랜드 북부의 더럼대학(Durham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 강의와 연구 활동의 한편 서른 초반부터 약 10년 간 BBC라디오에서 음악 프로듀서로 일했다. 40대에 접어든 1971년부터는 스스로 본업이라 여겼던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캐나다 온타리오의 맥마스터 대학(McMaster University) 교수로 재직했고, 이후 캐나다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BBC 근무 시절 프로그램 원고를 검토하며 “영어권에 리스트에 관련된 제대로 된 책이 없음”을 깨닫고, 직접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데, 일생동안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옮겨 다닌 리스트의 행적을 따라 자료들을 탐색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25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한다. 리스트의 초창기(1811-1847)를 다룬 첫 번째 권이 1983년 출간된 이후, 1989년에는 바이마르 시기(1848-1861) 중심의 두 번째 권이 나왔다. 생애 후반(1861-1886)에 관한 마지막 권을 발표한 1996년에 저자인 워커의 나이는 이미 60대 중반에 이르렀다. (세 권을 합하면 2천 페이지 가까이 된다.)
바이마르 출신의 페터 귈케가 집필한 회고록(“Mein Weimar”, 1994)을 읽는 동안, 리스트가 오랜 기간 머물렀던 19세기 바이마르 시절이 궁금해져서 결국 세 권의 전기 중 두 번째 권을 펼쳐보다가, “역설적이게도, 리스트는 프로테스탄트 도시 바이마르에서 자신의 가톨릭 신앙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리스트의 신학에 대한 탐구와 성직자로서의 말년에 관한 단편적인 언급들을 이런저런 음악사 문헌들에서 주워 들은 게 전부이다보니, 세부사항들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일단 바이마르 시기의 책을 덮고, 전기의 마지막 권부터 읽기 시작했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이 내려다 보이는 로마의 수도원에 머물며, 젊은 날의 꿈이기도 했던 성직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거쳐 온 50대 중반의 리스트는 1865년 호엔로에 주교(Cardinal Hohenlohe, 1823-1896)의 도움으로 사제(Abbé)가 되었다.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9세(Pius IX, 재위 1846-1878)가 리스트의 서품 과정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리스트가 프란치스코 성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피아노 모음곡(Deux Légendes)과 오라토리오 ‘크리스투스(Christus S.3)’ 등을 작곡한 시기도 바로 이 때였다. (워커가 이 시기 리스트의 행적을 연구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가톨릭 사제로서의 그에 관한 자료들에 대한 본격적 접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후고 발(Hugo Ball, 1886-1927)은 ‘독일의 음악은 종교개혁을 계기로 시작되었다’고 규정했다. 근대 서양음악사의 시작점으로 흔히 거론되는 두 인물인 바흐(J.S.Bach, 1685-1750)와 헨델(G.F.Händel, 1685-1759)은 각각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도시(아이제나흐와 할레)에서 태어났다. 이들의 전성기였던 18세기 초-중반은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2-1546)가 가톨릭 비판의 맥락에서 추진했던 종교개혁 이후 약 2백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개혁改革이라는 한자어는 어쩐지 긍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루터의 결단을 전후한 Reformation의 맥락과 전개는 온갖 혐오(-phobia)와 분열(division)의 사례집인가 싶을만큼 여러 갈래의 갈등이나 대립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VSI 시리즈 “종교개혁”의 저자 피터 마셜(1964-)은 ‘인간 존재에 관한 중요한 의미와 목적,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상호 의무, 소신과 정치적 복종 간 균형’과 같은 ‘종교개혁이 제시한 오랜 질문들’만큼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 강조한다.
종교의 영역을 넘어서 외래문화 전달-학습의 의미가 컸던 한국에서의 서양 종교 수용 맥락만으로는, 리스트가 프로테스탄트 도시에서 자신의 가톨릭 신앙을 굳건히 다지게 된 배경이나, 또는 1829년에야 ‘가톨릭 차별 금지법Catholic Emancipation Act’이 시행된 영국에서, 성공회 신부였던 뉴먼 추기경(John Henry Newman, 1801-1890)이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된 맥락, 아울러 그의 장편시(The Dream of Gerontius, 1865)를 원작으로 음악을 작곡하며 청중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여전히 영국 내 소수집단이던) 가톨릭 가정 출신 엘가(1857-1934)의 창작 의도 같은 것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음악사의 관점에서 종교개혁과 그 이후를 다시 살펴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