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롯한 비영어권 국가들의 영문학 수용사
波潟剛, 西槇偉, 林信蔵, 藤原まみ 編, 『近代アジアの文学と翻訳: 西洋受容・植民地・日本』, 勉誠社, 2023.
日本英文学会(関東支部)編, 『教室の英文学』, 研究社, 2017.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서구화 초기 일본 근대소설을 확립한 동시에, 서양식 대학제도를 모범으로 설립된 '제국대학' 초창기에 영문학을 전공한 첫 세대에 속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산시로"를 비롯한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 중 영문학을 비롯한 서구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선생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미즈무라 미나에의 소세키 평론에는 '영문학'을 포함해 서구 문학을 공부한 당시의 청년들이 겪은 좌절과 곤란함들이 꽤 상세하게 담겨있다. 아직 서구식 제도가 본격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시대인 메이지 이전 또는 초기에 태어나, 성장해 갈수록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서구화' 되어야 했던 세대의 딜레마를 들여다 보며, 한편으로 식민지 조선 시기 최초의 '영문학' 전공생들은 어땠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1931년 경성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이혜구(1909-2010) 선생은 당시 영문과를 선택한 계기로 "중3 무렵 톨스토이 소설을 (영어로) 읽었던" 일을 언급했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중등학교에서는 일본의 영향으로 이른바 "원서 100권 읽기 운동"이 유행했다는데, (어떤 근거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영국 소설보다는 러시아 소설 영역본이 더 쉽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전에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들을 읽다가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서 러시아 문학의 영어 번역본이 출간되기 시작한 시점이 1912년 경부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 때를 계기로 일본에도 영어로 중역된 러시아 문학이 유입된 듯하다.
경성제대 영문과 3회 졸업생이었다는 이혜구 선생은 “당시 졸업생이 여섯 명 정도였고, 그 중 두 명은 일본인이었다”고 회상했다. (영문과 2회 졸업생 중에는 소설가 이효석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영문과를 나와 취직할 자리도 없고 약 1년 간은 집에서 영어 소설 번역 등으로 시간을 보내며 지내다가, 다음 해 경성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혜구 선생의 회고 내용은 KBS라디오에서 1982년 8월에 방송된 "나의 자서전" 시리즈 참고.)
2022년 열린 일본비교문학회 심포지엄 이후 책으로 출간된 “근대 아시아 문학과 번역”은 번역을 통해 영향을 주고 받게 된 근대 아시아의 문학 경향을 개관하기에 적절한 자료이다. 특히 나츠메 소세키가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를 매개로 러시아 문학을 접하게 된 경로와 그 흔적들을 살펴보는 논문 “러시아 문학을 영어로 읽은 소세키”는 앞서 언급한 이혜구 선생의 회고와도 맞물려 흥미롭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영어나 유럽어 등 서양언어와의 번역 뿐 아니라, 20세기 전반기 한국도 포함해 아시아 지역들 사이에서 서로의 언어로 오갔던 번역, 중역, 번안 등에 주목하는 내용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영문학을 가르치기 위한 접근법들’이라는 부제의 “교실의 영문학”은 일본영문학회(관동지부)에 속한 서른 명 넘는 영문학 연구자들이 제안하는 “강의안” 모음집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해당 언어의 ‘문학’을 공부할 때 겪는 공통적인 문제들이나 고민들을 공유하며, 각자의 ‘비법’들을 제안하는 과정들이 흥미롭다. 책의 구성은 크게 ‘영어’와 ‘사회/문화’, ‘영문학’의 세 파트로 나뉘는데, 무게를 두는 주제에 따라 문학작품에 대한 접근도 얼마든지 다양해 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서양음악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문학 역시 동아시아에 유입되어 정착하는 과정에서 서양 본토와는 전혀 다른 맥락의 특유한 점들을 갖게 되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서구 기원의 분야들이 '외국어’라는 덫에 얽혀 있다 보니, 어학능력시험이나 회화실력 향상 같은 ‘시급한?’ 현실적 과제들에 줄곧 밀려온 현상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한 세기동안 일본인 영문학자들의 다수는 ‘영어 교사’의 역할을 겸해 왔다고 하는 책 속 언급도 인상적이다.)
어느덧 한 세기에 이르는 “한국 영문학의 역사” 같은 주제도 이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