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아졌다 해도 여전히 드문, 여성들의 존재를 찾아서

20세기 영국의 대학 제도와 여성 연구자들

by yoonshun

F.M. Cornford, “From religion to philosophy: a study in the origins of wester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


Peter Brown, “Journeys of the Min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23.


콘퍼드의 “종교에서 철학으로”의 프린스턴 대학 출판사 페이퍼백 판본에 수록된 로버트 애커먼(Robert Ackerman)의 서문에는 콘퍼드를 포함하는 케임브리지의 ‘대담한 제의ritual우선주의자들 세 사람(brave trio of Ritualists)에 관한 언급이 있다. 이들은 모두 20세기 초 영국에서 고대 그리스 연구 분야에 기여한 공로로 명성을 얻었다는데, 콘퍼드와 길버트 머레이(Gilbert Murray, 1866-1957) 이외의 나머지 한 명으로 거론된 제인 엘렌 해리슨(Jane Ellen Harrison, 1850-1928)이 여성 연구자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속성으로 조사해 본 해리슨의 프로필에는 “영국인 여성 연구자 중에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초창기 인물”이며, “그리스 종교연구(the Study of Greek Religion, 1903)” 등의 저작을 통해 고대 그리스의 종교에 관한 급진적 재해석을 시도했다고 한다. 해리슨은 잉글랜드 서남부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에 위치한 Cheltenham Ladies’ College를 거쳐 케임브리지에 속한 여학교 중 하나인 뉴넘 칼리지(Newnham College)에서 공부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 1929)”에도 해리슨에 관한 언급이 등장한다. (“자기만의 방” 집필 계기가 된 두 차례의 공개 강연 중 하나는 바로 뉴넘 칼리지에서 진행되었다.) 울프는 당시 영국에서 출간된 책의 저자들 중에 여성의 비중이 늘고 있다는 사실에 더해, 한 세대 전에 비하면 여성들이 다루는 글의 주제와 장르에도 폭이 넓어지고 있음을 강조하는데, 그러한 사례 중 하나로 해리슨이 거론된 것이다. (”There are Jane Harrison‘s books on Greek archaeology; (…) There are books on all sorts of subjects which a generation ago no woman could have touched.”)


20세기 영국의 대학 제도 속에서 여학생들이 놓여 있던 입지에 관해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게 된 계기는, 지난 일 년 간 정독했던 피터 브라운 선생의 자서전을 통해서였다. 1950년대 옥스퍼드 학부에 입학하고부터 십 여 년 간 그곳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과정을 회고하던 그에게, 옥스퍼드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대단히 ‘독특한’ 제도이며, 단단한 권위만큼이나 오늘날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듯한 한계도 뚜렷한 조직이었다.


특히 남녀 분리 교육의 관행이 뿌리 깊던 영국의,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남학생 중심의 대학이던 옥스퍼드에서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던 여자대학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편견이 완화되고 서로 교류하게 되기까지는 대단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일화들을 접할 수 있다.


아일랜드의 개신교 가정 출신으로 모국에서도 철저한 비주류에 속했던 피터 브라운 선생은, 자신에게는 ‘외지’에 해당하는 영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언제나 중심에서 한 발 떨어진 주변부를 살피는 데 탁월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던 듯하다. 그 세대 서구 학계의 어느 누구보다도 여성 연구자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교류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아울러 브라운 선생이 옥스퍼드를 떠나 몇 년 간 재직했던 로열 홀러웨이 대학의 설립 배경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는 부분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빅토리아 시대 자산가였던 토마스 홀러웨이(1800-1883)가 19세기 후반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설립한 이후, 로열 홀러웨이는 런던대학의 한 단과대로 포함되면서, 일찍이 1878년부터 여학생들에 대한 학위 수여 제도를 마련했다. (옥스퍼드의 경우 1920년, 케임브리지는 1948년이 되어서야 여성들에게 정식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35년생인 브라운 선생이 언젠가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가”하는 질문을 받고 즉각적으로 “나의 고모와 이모들(For my aunts)”이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좋은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대학에는 갈 수 없었던 (대략 버지니아 울프 활동 시기의 독자들과 비슷한 세대에 속하는) 자신의 고모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는 것이다.


가문과 시대를 바탕으로 하는 역사와 계보, 그러한 가치들을 아우르는 모든 삶의 지혜를 전해준 자신의 이모들과 고모들은, 바로 그가 오랜 기간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동기이자 목표가 되어 왔다. 어떻게 보면 가장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대학’에 소속되어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고대 로마사를 연구하면서도 언제나 ‘대중을 위한 글(the idea of writing for an imagine public)’을 추구했던 브라운 선생의 글에서, 학술적 영역을 넘어서는 특유의 낮은 자세와 겸손의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들의 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