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생 일본인 엘리트들의 서구 지향과 정체성

오자와 세이지와 동시대 어르신들이 회고하는 20세기

by yoonshun

小澤 征爾, 武満 徹, 『音楽』, 新潮文庫, 1984 (초판 1981).


小澤 征爾, 大江 健三郎, 『同じ年に生まれて: 音楽, 文学が僕らをつくった』, 中公文庫, 2001.


2011년 출간된 70대 중반이던 오자와 세이지(1935-2024)와 당시 환갑을 막 넘긴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화집을 계기로, 시간을 거슬러 그가 참여했던 전혀 다른 방식의 또다른 대화들을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우선 1981년 마흔 후반의 오자와가 동시대 작곡가 타케미츠 토오루(1930-1993)와 나눈 대화, 또 다른 하나는 세기 전환기였던 2000년 연말 요미우리 신문사의 기획으로 진행한 1935년생의 동갑내기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와의 대담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하버드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해이기도 하다.)


이미 수십년 간 음악 활동을 함께 해 온 오랜 동료이며, 중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공통점 이외에도 다수의 화제들을 공유하는 오자와-타케미츠 두 사람의 대화는 그 자체로 더이상의 해설이 필요없을 만큼 압축적이고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책의 제목도 다른 수식어 없이 그저 “음악”이다. 당시 일본이 아닌 보스턴과 뉴욕에 각각 거점을 두고 활동하던 이들은 자신의 모국을 한 발 물러나 바라보며 이런저런 비판을 전개하면서도, ‘일본인으로서 서양음악을 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이나 명분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의견을 나눈다.


그리스도교도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형제들과 주일학교에서 찬송가를 접하며 음악에 가까워졌고, 이후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면서 “독일음악을 지향”하던 오자와는 1973년부터 보스턴 심포니(BSO) 음악감독으로 약 20년 간 재직하며 ‘미국 오케스트라’의 역사 속 인물이 되었고, 어린시절 아버지의 재즈 음반으로 음악을 알게된 이후 1950년대 유럽 작곡가들의 영향으로 “전자음악과 실험음악”에 심취했던 타케미츠는 존 케이지를 비롯한 당대 서구 작곡가들의 일본사상 예찬에 영감을 얻어, 샤쿠하치尺八나 비와琵琶 같은 ‘일본 전통악기’를 서구식 오케스트라에 도입하는 기법으로 20세기 후반 서구음악의 주요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다.


‘서양음악’이라는 영역에 속해 있으면서도 ‘일본인’으로서의 어떤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으며 언제나 두 전통 사이에서 맞서거나 타협해야 했던 이들은, 일본의 관점에서 서구음악을 바라보는 동시에, 서구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일본을 상대화하며 비판하기도 한다. 원본 출간 3년 후인 1984년 간행된 문고본에는 당시 엔지니어이자 전자음악계의 리더격이던 YMO의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 1947-)가 집필한 (본문 내용과 크게 관련없는) 짧은 해설이 수록돼 있는데, 장르나 활동 영역에서 타케미츠-오자와와는 다소 동떨어진? 듯한 그의 글을 덧붙여 둔 것은 더 넓은 독자층을 의식했기 때문인걸까.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오에 겐자부로와 오자와의 대담은 유력 일간지의 기획인데다, 담당 기자가 신문 지면에 실렸던 두 사람의 대화를 이후 ‘대폭으로 가필’ 작업해 출간된 책인만큼, 대화 자체가 전달하는 현장감보다는, 상대적으로 신문사의 논조를 드러내는 거대 담론들과 당시의 시사 이슈들이 중심을 이룬다. 그럼에도 상대에 따라 대화의 완급과 거리를 조정해 가는 오자와의 수완에 더해, 오에 겐자부로가 작가로서 내세우는 신념과 주관을 접할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생애동안 몰입했던 한 분야에서 각자의 성취를 이룬 (그들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노인’으로서 젊은 세대들에 대한 책임감과 기대감을 무겁게 인식하는 (당시 65세의) 두 사람의 대화는, 미래를 내다보는 ‘교육’과 ‘어른’의 역할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급격한 서구화의 흐름 속에서 마치 경주하듯 달려온 근대 동아시아의 구성원들이, 그저 공허한 ‘소비’에만 빠져들지 않고 내면을 채워가기 위해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거리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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