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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22. 2024

'남자답다'는 건 도대체 뭘까?

남자다움

지금 기분이 어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지는 않는가.

뭐, 그냥. 별 기분 아닌데.
아무 기분도 아닌데.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머뭇거리며 대답의 꼬리를 흐리고 있지는 않은가.



까르르 신나게 웃다, 화내며 씩씩거리다, 서러움에 으앙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기쁘다고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무서워하기도 하고.... 분명 어렸을 때는 다양한 감정 표현을 할 줄 았았던 세상의 아들들이 점점 사회가 요구하는 '남자다운 남자'로 자라기 시작하면서, 말 수가 줄고 표현할 수 있는 표정의 가짓수가 줄고, 눈 맞춤과 눈물이 줄어든다. 



살면서 남자가 우는 걸 몇 번이나 보았을까. 아파도, 힘들어도, 답답해도, 두렵거나 불안해도, 무서워도, 슬퍼도, 괴로워도,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울지 못하던 남자가 울음을 터뜨릴 때, 감동마저 느껴진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의 탈출 장면처럼. 오랫동안 남자 안에 갇혀 있던 감정이 마침내 단단한 벽을 뚫고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오는 그 순간이 탈출의 순간과 꼭 닮아서.  


'남자답다'는 건 도대체 뭘까?


많은 남자들이 울거나 감정을 표현해서는 안 되고, 심지어 감정이란 게 존재하는 사실마저 잊으려고 애쓴다. 주위에 보이는 가장들은 늘 바쁘고 피곤할 뿐, 생각이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자신의 나약함이나 미약한 자존감은 어떻게든 감춰야 한다. 때로 여자들 앞에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심한 경우 폭력을 쓴다. 남자가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쓰며 강하게 보이고 싶어 할 때, 결국 드러나는 건 그의 낮은 자존감과 나약함, 개인적인 결핍과 공허, 욕구불만 그리고 무력감뿐이다. 강자로 보이려는 그 허술한 위장은 너무도 쉽게 실체를 드러낸다. 진정한 강함은 오히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직면할 때 드러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확고히 믿을 수 있을 때, 저절로 빛처럼 새어 나온다.





아내나 여자 친구와 대화할 때, 하품을 하거나 딴청을 부리는 남자들이 있다. 사사로운 감정을 시시콜콜히 얘기하는 게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다. 굳건하게 쌓아놓은 성벽 안으로 불안이나 두려움, 슬픔, 힘에 부치는 요구와 무력감 등을 절대 들여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나약한 감정으로 남자다움이 오염될까 두려워 벽을 단단히 세우고 감정을 외면한다. 하지만 모든 남자는 남자이기 전에 인간이다. 불안, 슬픔, 두려움, 초조함 등 모든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회가 왜곡된 남자다움을 강요하다 보니, 위로해 주고 위로를 받아들일 줄 아는 남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남자들은 만나면 함께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뭔가 행동을 하려고 한다. 이야기를 해도 정치나 스포츠처럼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한다. 친구가 없는 건 아닌데, 개인적인 문제나 고민이 생겼을 때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친구는 금방 떠올릴 수 없다. 


가끔 남사친이나 선후배들이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 감정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대화가 끝나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런 이야기하는 거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 남한테 하는 거 처음이야.

얼마나 많은 남자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할 위로와 격려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특히 남자들은 무기력에 취약하다. 항상 뭔가를 성취하고 성공해야 남자다운 거라고 여기며 달려온 남자들은 인정이든, 돈이나 명예든 보상이 주어져야만 존재감을 느낀다. 실패에 직면하면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그 타격은 같은 실패를 경험한 여자들이 경험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다. 남자들에게 무력감은 최악의 감정이다. 성취하지 못할 때 우울증에 빠지는 남자들이 많은 이유다. 배우자에게마저 등을 돌리고, 부부 관계마저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경우도 많다. 심각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키고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도움의 손길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자라고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해결할 필요는 없다. 대화를 통해 당장 해결책을 찾지는 못해도,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훨씬 잘 정리된다.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관심과 결속도 강해진다. 마음에 짐이 되는 생각이나 지금 느끼는 감정, 갈등이나 걱정, 아니면 그저 소소한 일상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편안함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에게서 위로와 힘을 얻는 건 절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이고 남자다운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우리는 혼자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기쁠 때는 함께 펄쩍펄쩍 뛰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슬플 때는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울고 싶을 때는 울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공유하고 소통해야 메말랐던 삶에 생기가 돈다.


이야기해도 된다는 것도 알고 들어줄 상대도 있다 해도, 그 앞에 막상 서면 할 이야기가 없어 앞이 깜깜해질 수 있다. 사실은 자기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해본 일이 거의 없으니까.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질문은 수없이 많이 했지만, '지금 내 기분은 어떻지?'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건 뭐지?' 난 지금 무엇에 만족하고 무엇에 불만을 품고 있지?' '내 안에 해소되지 않은 욕구는 뭐지?' 이런 질문은 스스로 던져보지 않았을 테니까.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자신과 대화를 하는 건 남자답고 멋진 일이다. 지금 기분이 어때? 이 질문에 당황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며 "뭐, 그냥 그래"라고 얼버무리는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밤마다 잠을 잘 못 자서 뒤척이고, 머리가 멍한 게 많이 답답하네.
마음이 많이 흔들리고 금방이라도 천장이 무너지듯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마음속 빈 구멍이 몹시 시리고 추워.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 주면 좋겠어.
어떤 말을 듣는 데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어.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말도 잘 알아들을 수 있다. 숨은 욕구와 욕망을 끄집어내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게 실마리가 되어 그 욕구를 충족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뚜껑을 열어 보자. 내 안에서 보아 달라고, 들어달라고 외치는 감정과 욕구들을 하나씩 꺼내어 들여다보고 그 하나하나를 인정해 주자.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과의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을 때, 그동안 몰랐던 많은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지금 행복한지, 어떤 일에 만족하고 어떤 일 때문에 불행한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꺼리는지, 어떤 욕구를 그동안 애써 눌러왔는지, 엄마나 아내에게 어떤 것들이 불만이었는지 등등. 



슬프고, 외롭고, 답답하고, 그립고, 두렵고, 불안하고, 아프고, 즐겁고, 행복하고, 우울하고, 침울하고, 개운하고, 거북하고, 열없고, 착잡하고, 휑하고, 찡찡하고, 흐뭇하고, 마뜩잖고, 애틋하고, 기쁘고, 화나고, 긴장되고, 초조하고... 수많은 다양한 색깔의 기분과 감정들을 깊이 느껴 보면, 흑백이었던 삶에 컬러가 더해질 것이다.


어느 학교를 나왔고, 무슨 직장에 다니고, 연봉이 얼마고 따위로 표현되지 못하는 나를 찾아 표현해 주자. 자신을 좀 더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고난 속에서 좌절하고 우울해하다가도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을 보고 마냥 아름답다고 느끼는 나.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면 괜히 설레고, 푸른 하늘을 보면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여기는 나. 

나를 향해 총을 쏘아대는 사람도 마냥 미워하지는 못하는 나.

아직 온전히 이루지 못했지만 가슴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나. 

불같은 열정이 아직도 뜨겁게 가슴에 남아 있는 나.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들린다. 예전에는 스치듯 흘려버렸던 아내나 여자 친구의 이야기가 비로소 가슴에 울릴 것이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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