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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15. 2024

가슴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봐!

분노

중요한 서류를 분실하거나 상사 앞에서 서류에 커피를 엎지르는 비서, 

만성적인 손목 통증으로 집안일을 할 수 없는 가정주부, 

성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감증이라 불리는 아내, 

식사량과 수면량이 급격히 줄어 점점 비쩍 말라가는 청소년, *

약물 남용으로 말캉하게 썩은 야채처럼 흐느적거리는 취업준비생, 

손목에 수도 없는 칼자국으로 여름에도 반소매 옷을 입을 수 없는 아이.



수많은 상담 사례를 보면, 사람들 무의식 속에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어찌 그리 많은지 깜짝 놀란다. 애써 자신을 억누르고 있지만 어떤 계기만 있으면 폭발할 사람들. 바늘로 살짝 찌르기만 해도 꽉 차 있던 불만과 불안이 분출할 수 있다. 나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 돌프 질먼은 육체적 위협이나 자존심에 받은 타격, 괴롭힘, 왕따, 처벌, 구타, 무례한 대접, 모욕, 좌절 등으로 위험에 처했다는 느낌이 들 때, 분노를 촉발한다고 했다. 물론 그 판단은 주관적이어서 남들은 아니라고 해도 본인이 위험을 느낀다면 분노가 촉발된다. 위험을 느끼거나 분노가 솟아오를 때, 우리에겐 두 가지 표현 방법이 있다. 

하나는 투쟁, 다른 하나는 도피

투쟁은 분노를 촉발한 상대에게 응징과 보복을 시도하며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반대로 도피는 분노를 드러내지 않고 자기 안으로 숨기는 것이다.



분노는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외침이며 호소이고 요구이다. 분노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왜냐고? 분노는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 주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도이기 때문이다. ... 분노는 건강에 대한 청신호이다. 분노는 과거의 삶이 죽었음을 알리는 하나의 폭발물이다. ... 게으름과 무관심, 절망은 적이지만 분노는 친구이다.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중



분노는 표현되어야 좋지만, 현실적으로 분노를 정당하게 발산할 배출구가 없다. 그래서 속으로만 화를 낸다. 지나친 위험을 무릅쓰지 않기 위해, 대개는 자기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도피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 건강보험심사통게원 통계를 봐도 우울증으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는 계속 늘고 있고, 2022년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거의 100만 명에 이르렀다. 


우울증 진료 환자 증가 추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


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은 직접 분노를 표출하지 못해 생기는 무기력이다. 표출되지 못한 분노는 보통 어떤 욕구가 심하게 손상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노를 잘 관찰하고, 숨어 있는 뜻을 파악해야 한다. 분노는 절대 무시하면 안 되는 '내 가슴속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다. 손상된 욕구와 분노할 정당한 이유를 깨닫고 자신의 분노를 용납하는 과정을 잘 겪으면, 오히려 분노를 통해 내면의 진정한 힘을 발견하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분노 안에 숨은 다양한 감정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여성은 주로 분노를 내면화해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반해, 남성은 주로 죄책감이나 공포, 무력감을 분노와 화로 표출한다. 분노가 힘을 상징해 남자답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다 보니,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죄책감이나 공포, 무기력 등의 감정을 숨기고 대신 화를 내는 것이다. 무기력 속에 숨어 있는 분노를 찾는 것만큼, 분노 속에 숨어 있는 무기력을 찾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내 안의 숨은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는 건 내 에너지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산이 된다.


분노를 잘못 표출하면, 자기만 강하고 옳다고 믿는 오만에 빠질 수 있고, 성급히 공격해 실수할 수도 있고, 순간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중요한 맥락을 놓치기도 한다. 한때 분노를 행동으로 바로 표출하는 것이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고 분노를 잠재워준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많은 심리학 실험이 그 믿음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깨지지 않는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인형을 두들겨 패는 행동처럼 남에게 무해한 행동이라도 분노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분출하고 나면 오히려 화를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하고 화를 더 북돋게 된다. 화를 무조건 억압해도 안 되지만, 상대방을 탓하며 바로 공격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화가 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 화를 표현하되, 남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 분노를 표현하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다.


시도 때도 없이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내는 건 미성숙한 태도지만, 분노해야 할 일에는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에 대해서는 절대 침묵해서는 안 된다. 불의나 학대, 무례와 부당한 대우에 맞서 분노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오래전에 본 영화 <크래시>에서 유독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흑인이자 방송국 PD인 카메론이 아내 크리스틴과 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백인 경찰에게 검문을 당한다. 경찰은 도난당한 차와 같은 차종이라는 이유만으로 두 사람의 몸수색을 하는데, 유독 크리스틴의 몸을 노골적으로 더듬으며 성적 모욕을 준다. 남편 앞에서 수치를 당한 크리스틴이 가만히 있는 남편을 비난하지만, 카메론은 자신이 받을 불이익을 생각하며 그냥 침묵한다. 



이 세상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카메론은 자신이 흑인이라는 핸디캡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약자가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다. 물론 그 자리에서 경찰에게 펀치를 날림으로 총 맞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만, 나중에라도 지혜로운 방법으로 불의한 행위를 폭로하고, 그 경찰에게 다른 사람을 함부로 모욕하고 유린하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어, 난 힘이 없어' 하며 손쉬운 복종을 택하기 전에, 우리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말썽이나 저항, 방어가 전혀 없이 모든 것에 복종만 한다는 건 지켜야 할 자아나 존엄이 없다는 뜻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서 무엇이 정의고 불의인지 판단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생각하는 힘을 더 강하게 키워야 한다. 세상이 쏟아붓는 정보와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책을 잦아 읽고 그것을 깊이 사유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와 그 역사에 대한 성찰, 우리 삶에 관철되는 정치적인 힘, 평범한 대중들의 취향에 내재해 있는 사회적 맥락 등을 꼼꼼하게 읽어내기 위해 책을 읽을 때도 분별 있게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분노할 때를 정확히 알아 분노하고 싸워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분노, 가슴이 외치는 소리를 잘 들어보자. 특히 세상의 약자들이 외치는 소리를 흘려듣지 말고 귀담아 들어야 한다.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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