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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08. 2024

나는 정말 왕따의 순수한 피해자이기만 했을까

따돌림

어릴 적 친구들 얼굴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J의 모습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피아노 콩쿠르에 나갈 때 눈부시게 하얀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나갔던 아이. 그냥 단정한 원피스를 입었던 나보다 피아노를 조금 못 쳤고, 키가 조금 작았던 아이. J의 눈에는 내가 눈엣가시였다. J의 주도로 반 전체가 내게 말 한마디 걸지 않는 집단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왕따라는 단어도 없었고 내가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슬프다거나 외롭다거나 힘들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학교에 가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점점 안으로 침잠하며 인형처럼 앉아만 있었다. 



가끔 강연에서 여덟 살 때부터 왕따를 당했다고 이야기하면, 강연이 끝나고 꼭 한두 명이 나를 조용히 찾아와 자신이 겪은 따돌림 이야기를 해주었다. 따돌림은 더 이상 어린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왕따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성인도 많다.


남우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복도 창틀에 매달려 그 모습을 지켜본 수많은 학생 틈에 그녀도 끼어 있었다. 학생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고 붙잡은 것이 무엇이든 간에 더 꽉 움켜잡았다. 창틀이나 창턱, 친구의 손이나 맞잡은 손, 아무것도 잡지 않았던 손은 그냥 꽉 주먹이 쥐어졌다. 아마 그것은 저기서 떨어지는 사람이 순간적으로 자기 자신이라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종옥 <거리의 마술사> 중


왕따를 당하던 친구가 학교 창문에서 몸을 던지는 순간, 그걸 바라보는 아이들은 저마다 그것이 무엇이든 붙잡고 있던 것을 꽉 움켜잡았다. 떨어지는 몸은 내가 아닌데, 순간 떨어지는 몸뚱이가 제 것인 양 착각이 들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무엇인가를 꽉 그러쥔 것이다. 마침내 쿵 소리를 내며 친구의 몸이 땅에 닿았을 때, 그들 모두는 안도감마저 느꼈을지 모른다. 떨어져 죽은 누군가가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도록 설계된 사회 안에서 우리의 영혼은 이미 어릴 때부터 망가져 있다. 누군가를 따돌리지 않으면 자기가 왕따 당할 수 있으니, 많은 이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왕따의 가해자나 방관자가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반 대항 피구 시합에서 우리 반이 이겼는데, 그때 상대편에서 심판의 오판으로 진 거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공에 맞았는데 안 나갔다는 것이다. 나는 공에 맞은 적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 뒤에 터졌다. 피구에서 진 반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우리 교실에 찾아와 칠판에 나쁜 욕설을 써놓았다. 내가 그들 교실 앞 복도를 지나가려고 하면 떼로 몰려나와 못 지나가게 막았다. 학교에 가기도 싫고, 공부하기도 싫고, 그냥 사라지고만 싶었다. 괜히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한참 내려다보곤 했다. 


아이들의 차가운 비난의 시선을 그대로 내면화해 자기 비하와 자학을 계속했다면, 어쩌면 나도 결국 남우처럼 창밖으로 몸을 던졌을지 모른다. 다행히 어느 순간 차가운 시선 속에서 나 자신을 분리해 낼 수 있었다. 그때 썼던 일기가 도움이 되었다. 일기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고, 밖에서 차가운 시선과 따가운 비난의 화살로 지쳤을 때마다 그 세계에 들어와 조용히 쉴 수 있었다. 조금씩 내면에 힘이 생기자, 친구들에게 오히려 손을 내밀 수 있는 순간이 왔다. 내면이 강해지니 거절당해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고, 쓰러지지 않으니 다시 손을 내밀 수 있었다. 아주 더딘 과정이었지만, 그렇게 조금씩 친구들의 마음을 얻어갔다.



왕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다수의 싸늘한 침묵이나 험한 욕설이 아니다. 아무리 기억 창고를 뒤져봐도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한 아이 때문에 괴로웠다. 여덟 살 때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 때, 불의를 참지 못해 내게 손을 내민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아이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애를 교실 한구석에 놓인 신발장이나 청소도구함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무도 그런 가구를 괴롭히지는 않잖아요. 그 애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보이지 않았다고 해도 될 정도예요. 이건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아이들은 그 애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지 몰라요.

김종옥 <거리의 마술사> 중


나는 왕따의 순수한 피해자라고 생각했었다. 친구를 따돌리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사주한 적도 없고, 누군가를 따돌릴 의도를 가진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 아이에게 한 일이 바로 왕따 시키는 일이었다. 소중한 생명과 인격을 지닌 한 친구를 가구처럼 취급한 셈이니까. 아무리 그 당시 내가 왕따를 당해 심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해도 그건 변명의 여지없이 친구를 따돌린 행위였다. 




머리를 쥐어박고 가슴을 뜯어보지만 소용없다. 이름도, 얼굴도 그 어떤 정보도 모르는 그 친구를 찾을 길이 없다. 추억 속 인물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에 불려 나갈 일이 있다면, 꼭 그 친구를 찾고 싶다.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아니 이런 변명도 다 집어치우고, 상처 줘서 미안하다고. 너와 나 모두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말도 함께.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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