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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01. 2024

기품 없는 남자는 사랑할 수 없다

아름다움

기품이 없고 우아한 데가 없는 남자는 사랑할 수 없다. 형식을 중시하고 어딘가 고리타분한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규범을 깨는 행동을 해도 풍기는 우아한 향기는 막을 수 없다. 아무리 비싼 옷을 걸치고 매너 있게 행동해도 어딘가 졸부 같은 천박한 느낌이 드는 남자는 질색이다. 가진 게 없어도 구차해 보이지 않고 빛이 나는 남자가 좋다. 자기만의 감각이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에 불과하므로, 우리가 아름다움을 그토록 찬미함은 파멸하리만큼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중


평생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살았다. 아름답지 않은 건 사랑할 수 없고, 견딜 수도 없었다.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추한 걸 견디지 못하는 건 인류의 오랜 특성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은 종종 경배의 대상이 되었고, 때로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비극의 여주인공이 자신의 아름다움 때문에 파국을 맞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파리에 사는 친구를 만나 함께 코르시카 여행을 하기로 했을 때였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절대로 택시를 기다리는 줄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친구의 신신당부를 잊고, 큰 키에 미끈한 몸으로 위엄 있게 걸어와 저쪽으로 자리를 옮기라는 청년의 말에 어느새 그의 차에 타고 말았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어리숙하게 속는구나 싶어 속상하려던 참인데, 운전하던 청년이 영어로 말을 걸었다. 최근 파리 날씨며, 한국과 중국, 일본인 관광객의 다른 점등을 유쾌한 말투로 떠들었다. 파리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부드러운 어투로 충고하던 청년은 내가 잘 모르는 복잡한 골목을 빙빙 돌더니 10유로, 8시 이후는 할증 요금을 내야 한다며 10유로, 합계 20유로를 더 받아갔다. 물론 8시 이후 할증이 붙는다는 게 거짓이란 것쯤은 알았지만, 그 정도면 귀엽다고 생각하며 웃을 수 있었다.


프랑스는 대통령부터 거리의 행인들까지 유혹을 즐긴다. 유혹하지 못하는 자는 매력이 없는 자고, 매력 없는 자에게는 내 물건이나 나 자신, 내 나라도 절대 맡길 수 없다고 한다. 아름답지 않은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중국에 돌아오자 택시 기사에게 비슷한 속임을 당했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아챈 기사는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놔두고 에워가기 시작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지적해도 택시 기사는 못 들은 척 무뚝뚝한 얼굴로 내 말을 무시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20위안이 더 나왔다. 20위안은 20유로의 8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이지만, 기분이 나빴다.


중국인들도 속임수를 일종의 책략이고 능력이라 여긴다는 점에서 프랑스인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좀도둑을 만난 듯 기분이 나쁘고, 프랑스에서는 유혹이고 매력이라 느끼다니. 중국인 택시 기사는 20 위안을 얻기 위해 손님을 매혹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무뚝뚝한 얼굴로 내 질문에 답도 하지 않았으니까. 액수는 더 적어도 돈을 강탈당한 듯 느꼈기에 기분이 상했다. 아름다운 자의 속임은 유혹이 될 수 있지만, 매혹이 없는 자의 속임은 사기고 부도덕이다.


20여 년 전 중국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 중국인들의 머리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하얗게 서캐가 앉아 있었다. 목욕을 자주 못해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럼에도 물질에 지배당하지 않은 당당함과 자긍심에 그들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10여 년 만에 다시 중국에 돌아왔을 때, 중국은 깜짝 놀랄 만큼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많은 중국인이 기품과 아름다움을 잃은 걸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전반적인 인상일 뿐 기품과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는 중국인들을 여전히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무수한 정의가 있겠지만, 아름다움이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가졌는지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생김이나 소유와 관계없이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이건 절대로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이해해야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와 매력을 끌어낼 수 있다.



유행을 좇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자신만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심미안을 먼저 길러야 한다. 자신의 스타일은 스스로 창조해야 하니까. 아름다운 사람들은 남들이 소홀히 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평생 한 번도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뒷모습이나 눈을 감아도 알 수 있는 나만의 독특한 향기 같은 것. 소홀하기 쉬운 후각이 사실 감정적으로 가장 강력한 감각이다.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을 향기로 끌어당겨 나만의 향기 속으로 초대하는 일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시간을 거스를 수 없어 머리카락은 빠지고 피부는 점점 쭈글쭈글해지겠지만, 노화를 상쇄할 수 있는 나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가꾸고 싶다. 돈이나 권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매혹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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