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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Dec 18. 2023

네 발에 족쇄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뿐!

두려움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쥐라고 답한다. 평생 실제로는 별로 맞닥뜨려 본 적도 없고, 설사 마주친대도 달아나야 할 쪽은 내가 아니라 쥐인데 내가 벌벌 떨다니. 어이가 없다. 지금 '쥐'라는 글씨 하나를 쓰는 데도 머리가 쭈뼛 설 정도니, 두려움이 아니라 거의 공포 수준이다. 영화나 TV 화면에서 갑자기 쥐가 나오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고 심지어 울 때도 있다. 스튜어트 리틀이나 톰과 제리의 제리, 미키 마우스가 나와도 고개를 돌려버릴 정도니 말 다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가끔 전공 교과서에 쥐를 가지고 실험한 내용이 사진과 함께 실렸다. 내 교과서에 있는 쥐 사진은 이미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엉뚱한 그림엽서로 도배를 했지만, 다른 친구들의 교과서까지 내가 손을 댈 수는 없었다. 수업 시간마다 언제 쥐 사진과 마주칠지 몰라 고개를 자유롭게 돌리지 못하고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쥐 공포증에 대해 이야기하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어렸을 적에 쥐에게 물린 적이 있거나 무서운 기억이 있느냐고. 아무리 기억의 보퉁이를 뒤져도 쥐가 나를 해치려 했던 기억은 없다. 쥐를 향한 공포는 순전히 내 생각과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의 공포인 셈이다. 공포 반응이 누적될 때마다 두려움은 점점 커졌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적이 당신을 압도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말콤 엑스



혹시라도 쥐가 있을까 의심되는 곳은 절대 가지 않으니, 여행지나 숙소를 정할 때 선택지가 줄어든다. 다행히 두려움의 대상이 겨우 쥐라서 살면서 큰 결정을 하는 데 방해를 받지는 않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이 예측할 수 없는 미래라던가, 힘이나 권력을 가진 존재라던가, 실패 가능성이라던가,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손가락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두려움 때문에 행동반경이 훨씬 좁아지고 삶의 중요한 결정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내려버릴 수 있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시도할 때도 이미 한 발을 슬쩍 뒤로 빼고 해 보는 척하기도 한다. 운명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가진 게 별로 없으니까, 이젠 나이가 너무 많으니까 등등 핑계는 언제나 있다. 특별히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심지어 폭력을 일삼으며 남을 위협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사람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내부에 도사리는 두려움이 폭력과 잔인성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 내부의 두려움을 없애 보려는 비뚤어진 발악이 폭력이고 전쟁인 셈이다.


지구 구석구석은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 간혹  이들이 미명에서 깨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을 실제로 행동에 나서도록 해주는 사건은 너무 뒤늦게 찾아온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다가 왕성하던 젊음과 기운이 다 사라져 버린 뒤에 말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뛰어올라야 하는 그 순간 팔다리 감각을 잃고 영혼은 너무 둔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 영영 쓸모없는 존재가 돼 버린 그들은 혼자 중얼거린다. '너무 늦어 버렸어.'

프리드리히 니체



쥐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서일까. 몇 년째 보이지 않던 쥐 한 마리가 눈앞에 짠하고 나타났다. 나는 예전처럼 펄쩍 뛰며 소리를 지르거나 자리에 주저앉아 울지 않고 그 쥐의 엉덩이를 노려보았다. 쥐는 그런 내가 무서웠는지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여전히 두려워 몸은 덜덜 떨렸지만, 최소한 쥐가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엄청난 변화다.


두려움은 직면할 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 두려움의 그 보잘것없는 실체를 직면하면, 허상이 깨진다. 단 단번에 이뤄지는 마법은 절대 아니다. 쥐의 엉덩이를 노려보았다 해도 오늘 당장 쥐와 다정하게 눈을 마주치고 쥐를 쓰다듬을 수는 없다. 두려움과의 싸움 역시 시간과의 싸움이기에 많은 이들이 중간에 포기한다. '거봐, 안 되잖아' 하면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서서히 쌓여가는 그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다면, 두려움은 결국 사라지고 담대하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다.


두려움이 느껴질 때 일부러 더 대담하게 행동하고, 혐오감이 들 때 오히려 사랑하거나 동경하는 대상을 찾아 집중해 보자. 사랑이 두려움을 이긴다고 하면 너무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강렬한 감정이 다른 하나를 상쇄하는 건 사실이다. 나를 방해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열정을 쏟아부으며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다.


다행이다, 내 발에 족쇄를 채울 수 있는 것 오직 나뿐이라서. 두려움을 풍선처럼 크게 부풀릴 수 있는 것도, 그 풍선의 바람을 빼버릴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어려운 여건이든, 내 삶을 망가뜨리겠다고 협박하며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든, 날 위협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묶어 놓을 수는 없다. 


스스로 채운 족쇄를 풀고 넓은 하늘을 훨훨 날아보자. 누군가 '너무 늦어 버렸어' 하고 속삭이겠지만, 상관없다. 씩 한 번 웃어주고 계속 날아오르면 된다.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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