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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18. 2024

내 인생 최대의 금기는?

나는 문장과 바람을 피울 때 가장 흥분된다


남편이 밖에서 담배를 몰래 한 대 피우고 들어와 손을 깨끗이 씻고 향수를 뿌려도 바로 알아챈다. 담배 냄새에 민감하고 그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잔소리를 날릴 때마다 남편은 '당신도 예전에 피웠잖아. 그때가 좋았는데'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담배를 처음 피운 건 대학 때였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깜깜해지면 몇 명이 모여 학교에서 전철역까지 택시를 타곤 했다. 그중 한 친구가 택시를 타기 직전에 담배를 피웠는데, 택시에 타자마자 기사 아저씨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여학생이 담배 피우는데, 학교에서 퇴학 안 시켜?


왜 여자는 안 돼? 젊은 날 담배는 내게 금기였고, 지극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금기는 항용 공포와 동시에 지극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조르주 바타이유 <에로티즘 > 중



그렇게 시작한 담배를 끊은 건 미국 캘리포니아에 잠시 머물 때였다. 실내에서 무조건 금연인 금연법 시행으로,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담배를 피우려면 밖으로 나가 피워야 했다. 그 모습은 너무도 초라했다.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어버렸다. 벌금 따위를 물리는 그 법이란 금기가 좀스러운 데다, 금기의 위반이 전혀 에로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한 남자가 7년 동안 지극히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하려고 했으나, 홀어머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 여자랑 결혼하면 네가 5년 안에 죽는단다.
 5년밖에 못 살아도 그 여자랑 살고 싶어요.


남자는 자살을 기도하며 약을 먹었다. 병원에 실려가 위세척 끝에 겨우 살아났고, 결혼에 성공했다. 남자는 결혼 후 5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냈다. 


 에로티즘과 관련하여 결혼이 지니는 함정은 습관이다. 
무한히 허용되는 위반은 더 이상 위반이 아니다. 
… 
위반의 부재는 관능의 부재를 야기한다.
 -조르주 바타이유 <에로티즘> 중



5년이 지났지만 남자는 다행히 죽지 않았다. 남자가 걱정했어야 했던 위험은 죽음이 아니었다. 금기가 사라지자 따라오는 관능의 부재남자는 한때 목숨마저 바칠 수 있던 아내와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로 떠났다. 남자의 딸인 나는 그저 그런 불륜의 이야기에서 관능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금기라고 하기엔 캘리포니아 레스토랑에서의 금연법 위반처럼 좀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 말 걸' 하는 후회보다 '해볼 걸' 하는 후회가 더 크다는 얘기를 나누는데, 누군가 깜짝 놀란 듯 물었다.

 어머, 안 해봐서 후회하는 게 정말 있어?

내가 하고 싶은 건 다하고 살았구나, 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물론 하고 싶은 걸 정말 다 하고 산 건 아니지만, 많은 일들을 저지르며 살아왔다. 


일탈도 밥먹듯이 하면 더 이상 일탈이 아니다. 훌쩍 삭발을 하든,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하든, 그 정도의 일탈로 과연 화끈하고 신나다고 느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요즘 내게 지극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금기가 없다. 물론 금기가 정말 하나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그 어떤 금기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위반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에, 금기 위반에 시큰둥해졌다. 


일탈을 무슨 심심풀이 땅콩처럼 여기는 요즘, 나는 딴 여자에겐 눈길도 안 주고 자기 아내만 바라보는 남자를 가장 섹시하다고 여긴다. 다들 벗어나고 싶어 안달할 때, 벗어나지 않고 그 선을 지키는 것. 그게 오히려 화끈하고 짜릿한 게 아닐까? 


나 역시 이젠 모든 일탈의 욕망을 상상의 영역으로 집어넣고, 경계선에서 서서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는 그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고 싶다.


그런 나를 가장 매혹시키는 금기는?

바로 문장과의 연애! 문장과의 일탈이다.


나는 문장과 바람을 피울 때 가장 흥분된다. 문장 안에서 나는 금기된 그 어떤 것도 저지를 수 있다. 문장 속 금기의 위반은 지극히 에로틱하다.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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