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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11. 2024

프롤로그: '살아지는' 삶 속에서 사라지는 나를 찾아

뱀이 죽었다. 그 소식을 전하자 두 아이 모두 몹시 슬퍼했다. 그 뱀은 그냥 '어떤 뱀'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뱀'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거기 사는 친구 집에 들렀다. 아이들은 그날 처음으로 집에서 키우는 뱀을 보았고, 뱀에게 냉동쥐를 먹이로 주기도 했다. 그 뱀이 죽었다고 하니 아이들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뱀이 아니라 쥐가 무서워 끝내 친구가 키우던 뱀을 보지 못했던 나는 그 뱀을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보았다. 그 상상은 파리에 혼자 살면서 2미터가 훨씬 넘는 비단뱀을 기르는 직장인에게로 옮겨갔다. 그는 뱀에게 '그로칼랭', 곧 열렬한 포옹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왜 하필 비단뱀을 키울까. 고독했기 때문이다. 너무 고독해서 그로칼랭이 자신의 몸을 칭칭 감고 다정하게 조여 오는 느낌이 절실했다.


<그로칼랭>은 에밀 아자르의 소설이다. 당시 이미 유명했던 중견 작가 로맹 가리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낸 첫 소설이다. 로맹 가리는 자살 직전에 남긴 글에 에밀 아자르 뒤에 숨어 있는 로맹 가리를 알아보지 못한 비평가들을 보며 통쾌하다고 적었다. 당시 비평가들은 로맹 가리는 이제 한물갔고, 에밀 아자르가 뜨는 별이라고 극찬했었다.


로맹 가리


로맹 가리는 속으로 비평가들을 비웃으며 통쾌했을지 몰라도, 비평가들이 알아채지 못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다른 존재, 전혀 다른 작가니까.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을 덧입는 순간, 로맹 가리 속에 숨어 있어 스스로도 몰랐던 에밀 아자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로맹 가리는 내가 몹시 좋아하는 작가인데,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나온 소설들을 더 좋아한다. 로맹 가리는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에밀 아자르를 찾아내고 끄집어냈지만,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는 진짜 '나'의 이름을 아직 찾지 못한 건 아닐까. 


'살아지는' 삶 속에서 점점 사라지는 나.


'살아지다'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 찾을 수 없다. 한국어에 있지도 않은 '살다'의 피동형을 쓴 건데, '살아지는' 삶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능동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데다, 수동적인 삶 속에서 자아가 사라지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단어에 끌렸을 것이다. 마침 '살아지다'와 '사라지다'는 발음이 같다. 이는 진정한 자신을 찾아 '살아 있다'는 걸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고 경제적인 삶도 조금씩 나아지는 데 가끔 밀려드는 공허감. 스마트폰 연락처나 소셜미디어 팔로워수는 계속 늘어나는데 막상 고민이 생겼을 때는 털어놓을 사람이 없는 외로움. 큰맘 먹고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갔는데, 전혀 즐기지 못하고 일 걱정만 하는 마음. 통계만 봐도 OECD 최장 노동시간, 행복지수 최하, 자살률 최고 등 한국인의 삶은 매일의 실존이 고역이다.


스스로의 자존감을 짓밟고, 아이들의 자아 이미지를 일그러뜨리고, 배우자 가슴에 상처를 내고, 부하직원에게 모욕감을 주는 우리는 모두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다. '살아지는' 삶, 기쁨이 없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변화가 필요하다. 



당장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일주를 떠나라거나, 시골로 농사를 지으러 떠나라는 말은 아니다. 물론 어느 순간, 그것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거라는 확인이 들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모든 걸 던져놓기 전에, 먼저 무엇에 모든 걸 걸고 싶은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를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일에 기쁨을 느끼는지, 어떨 때 살아 있다고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잃어버린 기쁨을 찾을 수 있다. 스스로도 알아주지 않아, 점점 '사라지는' 나를 찾는 게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보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내가 원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글을 쓴다.
조앤 디디온



조앤 디디온

조앤 디디온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80살이 넘어 셀린느의 모델을 한 사람이다. 순탄치 않은 삶에서 엄청난 상실을 경험한 조앤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했다. 조앤의 말처럼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고, 자기도 몰랐던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갈 수 있다. '사라지는' 나를 찾아가는 방법은 여럿 있겠지만, 그중 어렵지 않게 당장 시작할 수 있으면서 효과를 체험할 수 있는 건 역시 글쓰기다. 


'살아지는' 삶 속에서 사라지는 나를 찾고 싶다면, 지금 당장 펜을 들거나 노트북 앞에 앉아 보자.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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