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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21. 2024

지붕 위를 유유히 걷는 고양이처럼

한 시절이 지나고 다른 시절이 올 때

봄을 기대하고 나갔다 북풍을 만났다.


2006년 결혼을 하며 한국을 떠나 상하이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한 시절이 지나고 새로운 시절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때 만나 한창 젊음으로 빛나던 시절을 함께 했던 지인을 작년에 다시 만났다. 10여 년을 각자 베이징으로 한국이나 일본으로 떠나 살다 상하이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기쁨도 잠시, 지인은 곧 다른 나라로 떠난다. 



떠나는 사람은 각종 환송 모임으로 바쁘게 마련이다. 겨우 시간이 난 날 우리는 푸른 잔디밭이 보이는 식당에서 만났다. 일기예보에서는 최고 기온이 24도인 봄날씨를 예고했고,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볼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예보는 심하게 빗나가, 시린 바람이 불고 흐린 하늘에서는 빗방울마저 떨어졌다. 봄을 기대하며 트렌치코트와 블레이저를 입고 나갔던 우리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몸을 떨었다. 말간 햇살을 맞으며 아기자기한 골목을 함께 걷고 싶던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봄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꽃이 피는 걸 시샘해 물러가던 겨울이 되돌아와 한바탕 추위를 부리는 꽃샘추위는 예견된 일이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전도서 3:4)


헤어지기 위해 차를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한낮인데도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지붕 위를 유유히 걸어가는 길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잠시 마주친 짧은 시절, 함께 눈물과 웃음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 또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의 삶을 살다 어느 날 문득 또 마주칠 수 있겠지. 


한 시절이 지나고 다른 시절이 올 때, 나는 많이 흔들린다. 지붕 위를 유유히 걷는 고양이처럼 균형을 잘 잡고 싶다.


지붕 위를 유유히 걷는 고양이 _ 상하이 창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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