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에도 굴하지 않고 변질되지 않게 지켜야 할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
지인의 부탁으로 오랜만에 행사 진행을 맡았다. 50대에 들어서며 갑자기 살이 붙었지만, 새로 옷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몇 년 전 샀던 옷에 몸을 구겨 넣었다.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
행사가 끝난 후 많은 이들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이제 이런 일은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휘저었다. 나는 젊었을 때처럼 당황하거나 떨지 않고 무대에 섰다. 리허설도 못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행사를 잘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고 무너진 내 모습만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 가장 싫었던 건 방송이 끝난 후 받는 피드백의 99%가 외모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메이크업이, 헤어가, 의상이 언제나 방송 자체보다 중요하다는 듯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싫었다. 그 바닥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는데, 나는 여전히 그때 그들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KBS 아나운서라는 꼬리표가 아직도 따라다니는 것처럼.
갖은 발악을 해도 내 몸이 중력을 거스를 수는 없다. 다만 아무리 잡아당기고 끌어내려도 변질되지 않는 본질. 그 본질만은 지키고 싶은데, 내게 그 본질에 해당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주먹 쥔 손가락 사이로 많은 것들이 스르르 빠져나간 뒤, 나는 주먹을 열어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텅 빈 손바닥을 보게 될까 봐.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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