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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n 20. 2024

12년 7개월만에 소설가로 막상 등단을 하려고 하니

소설은 내게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 같은 것

소설, 뜬구름 잡는 꿈


MBTI 두 번째 글자가 N인 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혹하는 편이다. 발을 땅에 붙이지 못하고, 허방을 짚으며 둥둥 떠다닌다. 손에 쥐고 이리저리 굴려볼 수 있는 장난감에는 흥미 없는 대신,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달이나 별, 구름 같은 걸 바랐다. 처음 소설을 끼적여본 건 열네 살 때쯤. 끝까지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구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 속을 헤매는 듯했다. 소설을 쓰겠다는 꿈은 그야말로 꿈처럼 느껴졌는데, 체육을 제외하고 내가 가장 못하는 과목이 국어였기 때문이다.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인 내가 입시에서 틀렸던 문제는 모두 국어 문제였다. 


소설, 상처와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안식처


명문대에 입학하고 졸업하자마자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에 입사했을 때, 나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꿈만 같아서 책으로 도피할 필요가 없었다. 삶이 팍팍하다는 걸 깨닫고, 다양한 관계에서 상처 입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내가 숨을 곳은 책뿐이었다. 그중에도 소설이 마음을 부려놓고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나는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대신, 집안에 틀어박혀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만큼은 나는 내가 아니어도 되었고, 이 땅이 아닌 다른 차원의 세계로 잠시 피신할 수 있었다. 나를 웃게 해주는 소설은 반가웠고, 울리는 소설은 그 핑계로 실컷 울 수 있어 더 반가웠다.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에서 안식을 얻을수록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소설, 진실을 말하기 위한 안전장치


마침내 그 마음이 그득 차올랐을 때, 나는 소설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2011년 11월 1일 처음으로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소설을 썼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1년 반 동안 수입이 없다, 다시 직장을 구한 남편이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위기의 시간에는 가족을 돌보는 게 우선이었지만, 이제 살 길이 열렸으니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상처와 고름이 차올라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진실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독자들이 사실을 기대하는 수필이라는 장르는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나 같은 겁쟁이에게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소설은 허구라는 안전장치를 제공하기에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소설, 가닿을 수 없는 꿈 


누구 맘대로 소설을 써? 소설이 내게 필요한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예기치 못한 장벽이 있었다.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등단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소설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워진다. 처음 몇 년은 자신감 충만했다. 신춘문예에 원고를 DHL로 부쳐놓고 크리스마스 즈음 잔뜩 설렌 마음으로 당선 소식을 기다렸다. 아무 연락도 받지 못하는 낙선이 이어지면서, 신춘문예 외에 다른 문예지에도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2,30번째 도전이 넘어가자, 응모했다는 기록마저 남기지 않고 잊게 되었다. 세다가 지쳐버린 것이다. 응모자는 점점 더 많아져 경쟁은 치열해지고,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젊은 문청들이 상을 휩쓸어 갔다. 배우지 못해서 그런가 싶어 소설 작법 수업도 듣고 합평도 받았다. 그렇게 합평받으며 수정해 낸 원고도 결과는 똑같았다. 왜 떨어졌는지 알려주는 법 없고, 심지어는 낙선했다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 침묵만 이어졌다. 쓰고 싶다는 마음만 잔뜩 부푼 채 쓸 자격을 얻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보냈다.


소설, 마침내 쓸 수 있게 되었지만 과연 쓸 수 있을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12년 7개월 만에 겨우 당선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기대치를 낮춰 작은 문예지 신인상 공모에 응모한 것이었다. 당선 소식에 기쁘다기보다는 허탈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쓰기 위한 자격을 얻는데만 12년 이상의 시간을 써버리다니. 살아온 인생의 4분의 1을 소설을 쓸 수 있는 자격을 얻는데 보낸 셈이다. 소설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뭐였는지조차 가물가물해졌다. 쓰고 싶다는 열망이 부풀어올라 폭발적으로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진이 다 빠져버렸다. 


돌아보면 내게 소설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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