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이틀째 빵 조각만 씹다 벌떡 일어났다. 상점 문을 닫으려면 1시간 정도 남은 시각, 열심히 걸으면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겠다. 해가 져 어둑해진 낯설고 황량한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미국 플로리다 주 내에서도 부호들이 편안히 노년을 보내는 곳으로 유명한 도시, 웨스트 팜 비치. 넓은 차도에는 차들만 쌩쌩 지나갈 뿐 걷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하루 종일 식사 같은 식사를 못해, 얼마 못 걸어 지치기 시작했다. 벌써 까져서 쓰리기 시작한 발가락 때문에 절룩거리며 걷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그 순간 가난이 우울과 불행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보았다. 발가락이 따갑고 다리가 아파서도 아니었고, 걸어가야만 하는 가난한 내 모습이 창피해서도 아니었다. 지친 표정과 축 처진 어깨로 천근만근 되는 짐을 진 노예처럼 비참하게 터벅터벅 걷는 모습에서 내가 가난에 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몇 걸음 앞에 까만 털의 귀여운 토끼가 나타났다.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8차선 도로 앞에서 토끼는 잠시 머뭇거렸다. 찻길을 건너고 싶은 모양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토끼는 찻길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무사히 건너야 할 텐데. 가슴을 졸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토끼를 바라봤다. 아슬아슬하게 반쯤 건넌 토끼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토끼는 멈추지 않고 나머지 반을 건너기 위해 달렸다.
토끼는 무척 빨랐지만 쌩쌩 달리는 차들보다 빠르지는 못했다. 그 어떤 운전자도 토끼를 보고 멈추지 않았다. 퍽 소리와 함께 토끼의 작은 몸이 붕 떴다 떨어졌다. 제발 일어나! 가슴속으로 외쳤지만, 토끼는 일어나지 못했다. 작은 몸뚱이마저 돌진해 오는 차들 앞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해갔다. 다리가 풀렸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호기롭게 방송국을 그만두고 낯선 땅으로 온 후 처음으로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없는 나와 차가 없는 토끼, 차가 없는 모든 것을 불행하다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진리처럼 느껴졌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공중파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되었을 때, 나는 재벌처럼 돈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돈의 힘에 무지하고 무관심할 정도는 되었다. 방송일이 갑자기 심드렁해지고 세상 어디에 떨어져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오만의 경지에 올랐을 때, 가진 걸 모두 버리고 캐리어 하나만 달랑 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년을 채 못 채우고 그만두는 방송국에서 주는 알량한 퇴직금이 가진 것의 전부였음에도 두려운 게 없었다. 예쁜 옷들과 구두, 가방, 그동안 모은 책과 음반들, 캐리어 하나에 들어가지 않는 모든 소유물을 남들에게 나눠주거나 버렸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소유나 돈에 대해 밑바닥까지 무지했고 무심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했다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다를 바 없었다. 가난을 몸으로 체험해 보지 않았기에, 천진하고 해맑은 호기심으로 오히려 가난이 가져다 줄 낭만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당연하게도 현실은 내게만 특별히 부드러운 손길을 내밀지는 않았다. 본래 가려고 목적했던 나라에서는 비자를 내주지 않았고, 넓은 미국 땅은 풍요로워 보였지만 초라한 행색의 동양인을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덩치 큰 백인들뿐이었다. 이방 땅에서 '예쁜 아나운서 아가씨 왔네' 하며 음식값을 받지 않는 식당 아주머니나 가벼운 위반쯤은 눈 감아주고 보내주는 경찰 아저씨 같은 걸 기대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유명 록그룹의 콘서트에 가서 헤드뱅잉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가난해도 자유와 저항 정신만은 결코 잃고 싶지 않아 찾아간 곳이었다. 메인 보컬이 마이크를 입에 대고 귀가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If you don't speak English, get the fuck out of here!
(영어 못하는 놈들 다 꺼져 버려!)
관중이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환호하는 소리에 귀가 멀 지경이었다. 내 안에 꼬물거리던 자유와 저항은 바짝 오그라들었다. 고등학교 때 이미 영어로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무대에서 영어로 클리템네스트라 역을 연기하며 아가멤논에게 칼을 꽂던 내게 그날 이후 영어 울렁증이 생겼다.
이렇게 가난에 지면 안 되는 건데. 이렇게 쉽게 굴복하고 불행해지면 안 되는데. 거리의 가난한 흑인과 히스패닉의 표정과 태도에서 가난 앞에 보이는 비굴함과 황폐함을 빠르게 학습해 갔다. 나는 기품이 없고 우아한 데가 없는 돈을 사랑할 수 없었다. 돈은 나처럼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서 기품과 우아함을 뺏을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가슴에 한이 있고 고통이 있으면 뭔가 그럴듯한 글이 써질 줄 알았는데, 처절함과 두려움, 굴욕과 무력, 생존을 위한 고달픔을 알게 되면서 감각이 둔화되고 보들보들하던 감성에 굳은살이 배겼다. 꿈이란 말 대신 해야만 하는 일들이 점점 머릿속을 지배해 갔다. 돈에는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사랑마저 왜곡하고, 가슴속 열정이나 꿈을 꺼뜨릴 수 있는 힘이 분명 있다.
가난 앞에 마냥 주저앉지는 않았지만, 결핍이 내 꿈을 제멋대로 칼질해 목표와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MBA만 하면 연봉이 몇 배로 오른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삶의 목표를 수정했다. MBA가 뭔지도 모르고 경영이나 돈에는 관심도 없었으면서 MBA 준비에 들어갔다. 그때까지 살면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일에 악을 쓰고 매달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돈 때문에 자율과 독립성을 통째로 빼앗기는 상황만큼은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좌충우돌 수많은 에피소드 끝에 Chicago Booth에 입학할 수 있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발을 뗀 셈이다. 그렇게 입성한 시카고에서 2년을 머물렀지만, 한 번도 그 안에 속해 본 적은 없었다. 존 행콕 센터나 시어스 타워에 올라가 보지도, 미시간 애비뉴를 걸으며 쇼핑을 즐기지도, 미술관이나 박물관 안을 한가롭게 거닐지도 못했다. 시카고는 그저 저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어두운 골목에서 마주치게 되는, 돈 달라고 손을 내미는 험악한 흑인들과 같이 나 역시 그 안에 있어도 그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나도 모르게 남들의 풍요와 나의 빈곤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었다. 돈의 힘을 얕보던 오만에서 온 타격이 너무 컸던 것이다. 돈의 힘을 너무 만만하게 얕보면 큰코다칠 수 있다. 하지만 돈에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내주는 것도 삼가야 한다.
언젠가 잠결에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깨어보니 중국 TV 채널에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장기 적출을 위한 인신매매가 빈번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었지만, 두 눈이 뽑힌 채 발견된 여섯 살 아이의 울음소리를 생생히 귀로 듣는 건 처음이었다. 머리로 이해하던 통증을 마침내 실제로 감각하게 된 것처럼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울부짖음이 귀에서 떠나지 않고 다음 날이 되어도 불쾌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토할 것 같아 식사도 할 수 없었다.
돈 몇 푼을 위해 여섯 살 아이의 두 눈을 뽑을 수 있을 만큼 악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돈에 칼자루를 쥐여주면 그보다 더한 악으로 치닫는 것도 그리 먼 길이 아닐 것이다. 돈에는 분명 힘이 있다. 절대로 그 힘을 무시하거나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하지만 돈의 힘도 다른 권력처럼 누가 쥐었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돈을 우습게 봐도 안 되지만, 절대로 그 앞에 무릎을 꿇어서도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 기품 있는 자의 손에 들어간 돈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마음의 온기를 되살려 새롭게 세상 밖으로 힘을 줄 수 있다.
돈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돈이 내게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줄이는 유일한 길은 내가 가진 돈을 대가 없이 남에게 흘려보내는 것뿐이다. 나보다 힘든 이웃에게 뭔가 줄 수 있다면 난 이미 부자다. 나에게 없어도 되는 아주 작은 재물이 누군가에게는 절망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밝은 빛이 될 수도 있다. 아주 적은 것이라도 대가 없이 나눠줄 때, 돈이 갖고 있던 파워도 조금씩 내 손으로 되돌아온다.
차가 없는 모든 것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가격을 짐작조차 못할 정도로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불행한 사람들은 있다. 반대로 가난한 중에도 부자들보다 더 밝게 웃을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행복은 우리가 돈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에 비례하지 않고, 그걸 얼마나 누릴 줄 아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언 30:7-9
차가 없는 모든 것은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에 감사한다. 가난에 대한 무지로 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으로 힘든 이웃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과 겸손을 그때 배웠다. 돈이 많아져도 오만하지 않고, 돈이 없어도 비굴하거나 황폐해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가진 걸 남과 나눌 때도 그것으로 상처 주지 않는 섬세한 배려의 마음을 더할 수 있기를.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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