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Jun 26. 2024

사람을 좋아하지만 아무도 없는 습지가 더 편안한 사람

낯선 곳으로 여행하는 이유

한동안 유화를 배운 적 있었다. 화실 동료들을 보면 누군가는 풍경을 계속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꽃이나 과일 같은 정물을 계속 그렸다. 나는 풍경이나 정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람 얼굴만 그리고 싶었다. 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온통 관심이 사람에 있음에도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관심을 표현하는 데는 영 젬병이다. 넓디넓은 순천만국가정원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튀르키예 정원이나 네덜란드 정원, 시크릿 가든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내게 말을 건 모르는 사람이었다.


쉬잔 발라동의 자화상을 따라 그리던 때



식물원 안을 빠르게 걷고 있을 때 “언니, 언니”라는 소리가 들렸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 나를 부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고 있었다. “우리 사진 좀 찍어 주세요”라는 말을 듣고서야 나를 부른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당황했다. 한껏 포즈를 잡고 선 여자들의 사진을 정성껏 찍어 주었다. 내게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이 나를 찍어주겠다고 했다. “혼자 다니니, 셀카밖에 못 찍을 거 아니에요.” 셀카만 찍는 내가 순천에서 전신사진을 선물 받았다. 순천에 머문 한나절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곳을 얼른 빠져나왔다. 그들이 좋았지만, 다시 내게 말을 걸까 봐 얼른 사람이 드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순천만국가정원 식물원에서 선물 받은 전신 사진


사람을 몹시 좋아하지만, 사람 하나 없는 습지의 갈대숲에서 마음이 훨씬 편안한 사람. 그게 나다. 낯선 곳으로 굳이 여행을 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결국 나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늘 어디로 숨어버리는 나는 나를 먼저 불러주는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한국에 짧게 머무는 동안 순천까지 내려온 것도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기 때문이다. 오목한 퍼즐도, 볼록한 퍼즐도 모두 있어야 그림이 맞춰진다.


순천과 광양으로 나를 초대해 주신 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