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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15. 2024

성공을 함께 기뻐해 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

우정

멀리 떨어져 사느라 몇 년째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서 안부를 묻는 이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친구의 이름을 보자마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메일을 단숨에 읽었다. 짧지 않은 이메일이었지만, 친구는 떨어져 지낸 긴 시간의 사연을 다 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생략하고 함축한 문장이 많았지만, 어쩐지 친구가 어떻게 살고 지금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만, 친구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만, 친구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울고 싶을 때 함께 울어줄 친구가 있는가. 약한 모습을 드러내어도 부끄럽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나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내 아픔을 진정 함께할 수 있는 친구. 마음속에 있는 얘기라면 그게 어떤 것이든 독백하듯 털어놓아도 불편하지 않은 친구.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어떤 말이든 끄집어내도 괜찮은 그런 친구. 내가 고통의 쓴 잔을 기울일 때 함께 하며 나를 위로해 줄 친구가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그런 친구를 젊은 시절에 찾았다면 정말 행운이다. 좋은 친구를 얻는 건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


내가 고통의 쓴 잔을 기울일 때 함께 하며 나를 위로해 줄 친구가 있다면 성공한 인생


언젠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곁에 있던 친구에게 술 한잔 같이 하자고 청한 적이 있었다. 술기운에 힘입어 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그때 그 친구는 보약을 먹고 있다며, 술잔 대신 따뜻하게 데운 한약이 담긴 잔을 들이밀며 건배하자고 했다. 그 순간 그 친구를 향해 나 있던 마음의 문이 '쿵'하며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날 쏟아내고 싶던 이야기는 하나도 꺼내지 못한 채, 굳게 다문 입술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내게 고통을 주는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그녀는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쇠털같이 많은 나날들이 무한정 널려 있다는 듯 내내 여유롭고 공감 어린 태도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내게 시간을 주었다는 것, 반복되는 일상의 압박이 내가 하려는 말들을 의미 없이 떠내려 보내지 않게 해 준 것만으로도 놀랍고 고마운 일이었다.
 
에릭 로맥스 <철도원> 중


로맥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지도를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혀 끔찍한 고문을 겼었다. 전후에 평범한 생활로 돌아와서도 소소한 일상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받았다. 로맥스가 어느 정도 회복해 당시 곁에서 고문을 지켜봤던 통역관을 만나 용서하는 데까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죽어도 용서 못 할 일본인 통역관에게 용서의 말을 전할 수 있게 된 건 헬렌 벰버의 도움이었다. 벰버는 로맥스와 정기적으로 만나 상담을 해주었는데, 마음을 열고 로맥스의 말을 들어주었다. 벰버가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어떤 권고도 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었을 뿐이지만, 로맥스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결국 그것뿐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결국 그것뿐일지 모른다.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편안한 마음으로 끄집어낼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고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 친구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더라도 편협한 잣대로 함부로 비평하지 않고, 그저 가슴 깊이 공감하며 들어주는 것. 들은 이야기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지 않고 가슴에 묻어 둘 수 있다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관계가 더 깊어지면 언젠가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읽을 수 있는 관계가 될 것이다.


공감은 거짓이나 위선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감사하게도 그런 친구가 있어 인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얼굴 한 번 보지 못할 때도 친구는 내게 Crying Shoulder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가 되어 주었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고비도 친구 덕분에 넘겼으니, 좋은 친구에게는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다


공감은 거짓이나 위선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한동안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위선은 결국 드러난다. 친구의 말을 들어줄 때는 진심을 다해야 한다. 혹시라도 내가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우월감을 느끼진 않는지 내 마음을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오묘해서, 자기 자신조차 감쪽같이 속을 수 있으니까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두 가지 태도만이 바르다고 마음속 깊이 확신한다. 침묵하고, 함께 있어 주는 것이 그것이다.

피에르 신부 <단순한 기쁨> 중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친구에게 충고하는 건 친구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 상대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감지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게 공감의 핵심이다. 똑같이 행동하는 듯해도, 입을 열기 전 평소보다 3초쯤 뜸을 들이거나, 눈을 한번 꾹 감았다 뜨는 작은 신호들을 읽어낼 수 있는 친구가 되려면, 관심을 갖고 친구를 바라봐야 한다.



힘든 고비를 지나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친구에게 불어넣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친구를 웃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밝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 안에 기쁨과 행복 같은 밝은 것들이 많이 들어 있어야 한다.


불행을 위로해 주는 것보다 친구의 성공과 성취를 내 일처럼 기뻐해 주는 게 훨씬 어렵다


보통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한다. 어려운 시절 곁에서 위로해 주던 친구가 그 어려움이 해결되자 갑자기 냉정하게 뒤돌아서는 걸 보고 깊은 충격을 받은 적 있다. 나의 불행을 보며 '내 처지가 조금 더 낫다'라고 버티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게 뒤집히면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불행을 위로해 주는 것보다 친구의 성공과 성취를 내 일처럼 기뻐해 주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그때 친구의 그런 마음마저 헤아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뒤늦은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곁에 있는 친구의 마음을 읽어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되도록 노력할 뿐.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소설미학으로 소설가 등단. 

‘책과 함께’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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