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_김훈
평생 한 번은 쓸 수밖에 없는 소설이 있다.
좋은 작품이 되든 안 되든, 재미있든 없든, 그 모든 것과 관계없이.
언젠가 권성민이란 PD가 쓴 에세이에서 글쓰기는 ‘싸는’ 행위라는 표현을 본 적 있는데 (물론 이렇게 표현하는 작가는 그 외에도 많다),
특히 이런 소설의 경우 적절한 표현이다.
마려우니까 싸는 거다.
자식이 다 커도, 심지어 늙어가는 중에도 무지막지한 영향을 주는 부모라는 존재.
그 존재의 무게.
나는 내 자식들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될까.
두렵다.
사람의 생애는 그 사람과 관련이 없이, 생애 자체의 모든 과정이 스스로 탈진되어야만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도 그의 한 생애가 끌고 온 사슬이 여전히 길게 이어지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옥죄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차세는 예감했다.
난 아버지를 묻을 때 슬펐지만 좋았어. 한 세상이 이제 겨우 갔구나 싶었지. 이런 사람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흙을 쾅쾅 밟았어.
난 한국이 너무 무섭고 힘들어.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다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