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첫 장에서 매료되었다.
그렇게 더럽고 누추한 곳에서 책을 그토록 아름답고 달콤하게 빨아먹을 수 있다니.
아주 조금은 뜬금없이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가 떠올랐다.
무의미한 것, 무의미해 보이는 것, 사소한 것의 위대함이랄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야만 알 수 있는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 한 번 정도 읽히고는 책장에 꽂힌 채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을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일생, 운명을 생각해 본다.
잘해야 주인공이 한 달이면 압축해낼 2톤 정도 분량의 책들.
물리적인 책 자체야 정말 쓰레기처럼 쏟아져 압축기 속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압축되어 꾸러미가 될 운명일지도 모르지만
혼자서도 혼자가 아니도록 그 안에 담겨 있던 많은 것들이 내 정신 속으로, 내 몸속으로 들어와 함께 해 줄 것인가.
압축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도 내 안에 머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프라하가 있는 나라.
체코에 또 한 사람 안아 주고 싶은 사람이 있구나.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1997년 사망)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
진정한 책에 내 눈길이 멎어 거기 인쇄된 단어들을 지우고 나면, 남은 것은 대기 속에서 파닥이다 대기 중에 내려앉는 비물질적인 사고들뿐이다. ... 만사는 결국 공기에 불과하니까.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들이 낀 장갑에 나는 모욕을 느꼈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데 없이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
책들에 둘러싸인 나는 책에서 쉴 새 없이 표징을 구했으나 하늘로부터 단 한 줄의 메시지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책들이 단합해 내게 맞섰는데 말이다. 반면 책을 혐오한 만차는 영원토록 그녀에게 예정된 운명대로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는 여인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돌로 된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