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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것은 진짜 바다일까, 그것은 진짜 사랑일까

상하이 진산 시티 비치

by 윤소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다는 말에, 내 마음 어딘가가 이미 벌렁거렸다. 마치 내가 배고픈지도 모르고 있을 때, “밥 먹을래?”하고 누군가 먼저 물어봐 주는 순간처럼, 이름도 몰랐던 허기가 불쑥, 존재를 드러냈다.


진산 시티 비치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바람을 맞으며 해안선을 향해 걷는 동안, 나는 상상으로 먼저 바다를 맞았다. 보드라운 모래 위로 부서지는 파도와 그 너머로 길게 누운 하늘, 그리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선. 수평선이 나를 맞아줄 거라 믿었다. 상하이에서 그런 건 사치일지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어디선가 본 이국의 해변처럼 탁 트인 풍경을 기대했다.


해변에 도착하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소처럼, “와, 바다다!”하고 외치지 못했다. 내가 만난 바다는 방파제로 둘러싸인 수영장 같은 바다였다. 좁은 해변에 일부러 파도를 가둔 것처럼, 테두리가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건 파도나 모래사장이 아니라 수평선이었다는 것을. 그 끝이 어딘지 짐작도 되지 않아, 그래서 마음을 훌쩍 데려가 버리는, 그 시선의 끝.


WechatIMG7646.jpg 상하이 진산 시티 비치


방파제는 그리 높지도, 두껍지도 않았지만, 시야를 막는다는 건 물리적인 두께와는 다른 문제였다. 마음은 오히려 더 쉽게 가로막혔다. 눈앞에 펼쳐진 건 바다가 아니라 ‘경계’였다. 바다에 오면 종종 마음을 놓쳤고, 마음은 금세 먼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 버리곤 했다. 이곳에서는 마음조차 머뭇거렸다. 바다가 아니라 바다처럼 꾸며진 해변 같았다. 진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짜라고도 할 수 없는.


WechatIMG7637.jpg 상하이 진산 시티 비치


문득 오래전 어떤 감정이 떠올랐다. 한순간 두근거렸고, 마음이 몹시 흔들렸지만, 끝내 손을 내밀어 잡지 못했던 사람. 온 마음을 걸기엔 자꾸 머뭇거리게 됐고, 그렇다고 완전히 놓아버리기엔 아쉬웠던. 그 감정엔 방파제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넘지 못할 높이는 아니었지만, 결국 그 너머로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바람에 머리칼이 마구 흩날렸다. 해변의 바람은 진짜였다. 바다는 시야보다 피부로 먼저 느끼는 거라고 바람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아채는 마음.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이미 가슴 한구석에서 일렁이던 감정.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던 온기.


WechatIMG7643.jpg 상하이 진산 시티 비치


모래사장엔 사람 키만 한 토끼 모형이 서 있었다. 이 바다에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존재. 이곳이 진짜 바다냐고 묻는 내게, 토끼는 마치 웃는 듯했다. 여기는 정말 바다일까.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진짜는 아니지만 가짜도 아닌 바다, 그리고 사랑.


“사랑할 때는 한쪽만 계속 찌르는 듯 아프고, 사랑 안 할 때는 어딘가 모르게 전체적으로 아프다.”

한귀은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 중


WechatIMG7642.jpg 상하이 진산 시티 비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 냄새가 옷깃에 남아 있었다. 문득 떠오른 그 시절처럼,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사랑처럼. 바람 냄새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 통증은 사랑을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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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ng 윤소희 작가 <사이코드라마> 북 파티!_ 사이코드라마 칵테일 첫 공개!





WechatIMG8733.jpg 윤소희 작가 @가가77페이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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