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6 눈부신 균열

상하이 우캉맨션 (武康大楼)

by 윤소희

프랑스 조계지 끝자락에 선 우캉맨션은 처음 마주하는 순간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르네상스 양식의 단정한 곡선을 따라 유려하게 흐르는 외관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처럼 보였다. ‘인스타그램 인증사진의 성지’라는 명성답게, 건물 앞에는 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선다. 황금 시간대가 되면, 더 좋은 구도를 차지하기 위해 삼각대를 세우고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WechatIMG6906.jpg


나 역시 여러 번 그 앞을 지나면서 휴대폰을 들어 올렸지만, 아무도 없는 깨끗한 프레임을 얻는 건 쉽지 않았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누군가의 팔이나 머리칼, 혹은 몰입한 표정이 프레임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중에는 그런 풍경조차 우캉맨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192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된 르네상스 양식의 베란다 스타일 아파트로, 초창기 영화계의 스타 배우들과 지식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셀 수 없이 많은 사진 속에서 우캉맨션은 여전히 절제된 품격을 간직하고 있다.


WechatIMG6905.jpg


어느 날, 우연히 거리의 소음을 뚫고 다가선 실물의 우캉맨션은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눈부시지 않았다. 어수선한 거리와 옹기종기 붙은 전선들과 벽 여기저기에 난 균열들. 적당한 조도와 정교한 프레임으로 보정된 사진 속 모습보다 실제의 우캉맨션은 덜 빛났고, 그만큼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처음 사랑에 빠질 때 우리가 느끼는 환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랑이 시작될 때는 상대의 모든 것이 눈부시다. 말투는 부드럽고, 걸음걸이는 우아하며, 사소한 실수조차 매력처럼 느껴진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것도, 술이 과한 것도, 허세 어린 말투조차 그 사람의 매력으로 둔갑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의 벽에 난 균열과 틈을 마주하게 된다. 우캉맨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던 어느 날,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화대혁명 시절, 이곳은 ‘다이빙 보드’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는데, 그 이유는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유령을 봤다고도 했다.


다시 우캉맨션을 찾았을 때, 처음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건물을 바라보게 되었다. 벽의 금이나 스산한 계단 끝의 어둠, 오래된 창틀의 녹슨 철이 더는 결점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흠집 하나하나가 이 건물의 서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흠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라보고 싶고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WechatIMG6907.jpg


사랑도 다르지 않다. 상대의 흠을 발견했을 때, 사랑은 비로소 시작된다. 낭만은 퇴색하고 현실이 들어오며, 환상은 걷히고 사람이 남는다. 그 사람의 삶에 스며든 습기, 오래된 기억의 냄새, 말 못 한 상처와 결들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사랑이 된다. 사랑은 완벽한 누군가를 찾는 일이 아니라, 결점 있는 사람과 함께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니까.



WechatIMG9454.jpg 윤소희 작가 _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