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짱위엔(张圆)
사랑하지만 헤어진다.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특히 젊은 날에는. 집안이 몬태규와 캐플릿가가 아니라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이유와 힘에 의해 헤어져야 하는 연인들이 있다. 차마 곁에서 볼 수 없을 슬픔을 남기고 돌아서는 남자와 여자.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다른 사랑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간다. 그런 두 사람이 중년이 되어 어느 날, 문득 연락이 닿는다. 그저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면 그만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날짜를 잡는다.
사랑이 식어 헤어진 경우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란 묘하게 작용하는 법이라, 나쁜 기억은 모래 아래로 묻어버리고, 풋풋한 시절의 다정함만 꺼내 놓는다.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는 까맣게 잊은 채, 헤어진 그와 우연히 마주친다면 다시 설렐지도 모른다. 구겨지고 뭉개진 일상에 실망하고 있다면, 더욱 흔들릴 것이다.
짱위엔 쓰쿠먼 롱탕의 좁은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먼발치에서 그들의 만남을 상상하는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당사자가 아닌데도 그랬다. ‘돌로 된 문’이라는 뜻의 쓰쿠먼(石库门). 이곳의 출입구는 화강암과 붉은 벽돌로 틀과 기둥을 만들어 단단하다. 개항 직후 유럽의 주택기술이 전해지면서 만들어진 건물의 외관은 서양식 아치와 조각으로 치장되어 화려하고 우아하다. 세련되고 낯선 세계가 곧 펼쳐질 것처럼.
실제로 그 문을 열면 작은 안뜰이 있다. 비가 내리면 잿빛 돌바닥 위로 물방울이 맺히고, 해가 뜨면 빛줄기가 사선으로 드리운다. 안뜰을 둘러싼 창들 안쪽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부엌에서 냄비를 두드리는 소리, 바느질하는 노모의 기침 소리 같은 것들이 흘러나온다. 거기서 멈추고 돌아나간다면, 그 사람과 나누었던 오래된 다정한 기억 속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더 안으로 들어간다면, 삶의 냄새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주방과 화장실, 좁고 긴 계단, 다락방과 창고 등 사적인 공간들이 속살을 드러낸다. 겉은 유럽식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안은 전통 중국식 마룻바닥과 나무 의자, 깊게 팬 세면대와 녹슨 수도꼭지, 묵은 먼지 냄새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비루한 내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의 흔적들.
단단한 돌문을 열고 옛 연애를 소환하려는 시도는 그를 그리워해서도, 아직 잊지 못해서도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그를 사랑했던 나, 지금보다 젊고 미숙했지만 풋풋하고 열렬했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사랑은 우리의 가장 연약한 마음이 하는 일이라, 최선을 다해 지키지 않으면 쉽게 찢어지고 산산조각 난다.”
곽금주 <도대체 사랑> 중
가족의 안전과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무겁게 잠갔던 쓰쿠먼. 단순한 호기심이라면 그 돌문을 열지 않는 편이 좋다. 흔들릴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그 안에는 꿈꿨던 유럽의 궁전은 없을 테니까. 문득 떠올릴 때 가슴 설레는 기억 한 조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추억에도 굳게 닫힌 돌문 하나쯤은 필요하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