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May 13. 2020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살짝만

<감각의 박물학> - 다이앤 애커먼

언젠가 어느 대기업 임원이 다른 B2C 관련 부서 임원들에게 인문학을 활용해 보는 게 어떠냐며 이 책을 짧은 편지와 함께 돌린 것을 보았다. 


<감각의 박물학>은 오래전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어 감각에 대해 공부할 때 내 손에 들어온 책이다. 

그 뒤로 다락방에 숨겨 놓은 보물 상자처럼 가끔씩 열어 보며, 아름다운 감각의 묘사들을 음미하곤 했는데. 

갑자기 대기업 임원들 손을 오가는 이 책을 보자, 낯선 침입자들에게 다락방의 보물 상자를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세상에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나 혼자만은 당연히 아닌데도. 


(물론 그 책을 선물 받은 임원들 중 끝까지 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기는 하다.) 


“세상은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가. 여름철, 우리는 침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다. 망사 커튼에 비쳐 든 햇빛이 물결무늬를 만들어내고, 빛을 받은 커튼은 바르르 떠는 듯 보인다. 겨울철, 침실 창유리에 새빨간 빛이 뿌려지면 사람들은 동트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잠결에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절망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가서 종이에 올빼미나 다른 육식동물을 그려 창문에 붙인 다음, 주방으로 가서 향기로우면서도 조금 씁쓸한 커피를 끓이는 것이다.” 
(책의 서문 중) 


아무리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떠돈다 할 지라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 보고, 맛볼 수 없다면 감탄과 기쁨은 삶에서 영영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각각의 감각에 대해 과학, 문화인류학, 미술, 음악, 문학, 언어학, 철학 등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다방면의 지식들을 저자는 시적으로 아름답게 풀어놓았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엄청난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기업인들이 (정치인이나 그 외 다른 분야에서도) 

잠자고 있는 또는 일시적으로 마비된 감각을 일깨우고,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아주 살짝만 몸을 건드려” “우리의 숨어 있는 마음”이 “그것을 놓치지 않”게 해줄 수 있다면, 그렇게 우리의 삶을 확장시켜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각의 박물학> - 다이앤 애커먼


가슴 설레는 추억을 불러일으킬 향기를 상실하면 "망각의 땅에 있는 것처럼 공허함을 느낀다"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아주 살짝만 몸을 건드려도, 우리의 숨어 있는 마음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복어 회의 묘미는 죽음의 가능성을 먹는 것. 입술 끝에 다가온 공포. 손님들 입술에 죽음이 스쳐 지나는 얼얼함을 느끼게 해줄 정도로 극미량의 독을 남겨놓을 줄 아는 이들이 가장 존경받는 요리사 
청각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림을 받은 감동으로 몸을 움직이진 않아도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있기는 힘들다
사람은 눈빛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에 '눌리지' 않고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