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에서 엄마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엄마라는 말 앞에서 늘 몸이 굳는다.
두 아이는 다행히 나를 닮지 않고, 효자인 남편을 닮았다.
두 아들이 차려 둔 아침상—그 앞에 카드와 영상 편지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영상 속에서 엄마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그 순간, 오래 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들썩였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외로웠다.
군의관이었던 아빠가 예정일에 맞춰 휴가를 받아 나왔지만, 나는 예정일보다 16일이나 늦게 세상에 나왔고 아빠는 결국 나를 보지 못했다.
첫 손주가 아들인지 딸인지—그것만 궁금했을 할머니에게 나는 양수 세례를 퍼붓고서야 세상에 나왔다.
막내동생이 “미스 신생아실”이었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예뻤다는 말은 영상으로 엄마에게 처음 들었다.
그것도 엄마가 울먹이며 말할 줄은 몰랐다.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나를 흔들었다. 생각해 보니, 그날 내가 세상에 온 일을 온전히 기뻐했을 사람은 엄마 한 사람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래도록 “외로웠다”는 문장으로만 내가 세상에 온 날을 기억해 왔는데, 오늘 엄마는 그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그래도 너는 귀했다”고 말해 준 셈이었다.
말기암 투병 중인 시아버지를 보살펴 드리러 한국에 간 남편은 새벽 5:22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보다 먼저, 2:45에 엄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소희야 생일 축하해. 난 30분 후 새벽 기도 간다.”
엄마는 사랑을 종종 서툰 방식으로 전해 왔을지 몰라도, 사랑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게 가장 고마운 일이 내가 하나님을 만나게 해 준 거라고 했다.
두 번째는 김서방 같은 사위를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도.
‘내가 했다’고 말할 게 없다.
받는 쪽도, 표현하는 쪽도 나는 여전히 서툴다—엄마를 닮아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두 번 읽었고, 지금은 원서로 읽고 있다.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내가 굳게 믿어 온 어떤 신념— 가령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같은—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한 발을 떼야 하지 않을까.
생일은 가볍고 상큼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눈물은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은 채 목에 걸린 채로 망설이고 있다.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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