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마음은 종이보다 먼저 낡는다

상하이우정박물관

by 윤소희

한때 마음이 종이에 접혀 도시를 건너다녔다. 상하이 와이탄 끝자락 우정박물관에 들어서면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높은 천장 아래 오래된 우편함과 낡은 계단, 손때 묻은 우표와 우편 장비들이 남아 있다. 누군가의 마음이 봉투 속에 접혀 이 도시를 떠났고, 또 다른 마음이 먼 곳에서 이곳으로 도착하던 시절의 증거들이다.


내 문학 수업은 종이에 마음을 접어 보내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열다섯 살,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미숙했고, 단순한 동경이라기에는 마음이 깊이 흔들렸다. 그 감정은 말로는 잘 다뤄지지 않았고, 종이 위에서만 겨우 형태를 얻었다.


우정국 1.jpg 상하이우정박물관


나는 매일 편지를 썼다. 문구점에서 사 온 편지지를 가득 채웠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가장 먼저 학교에 도착했다. 교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선생님 책상 위에 봉투를 올려두고 다시 나왔다. 그 일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일 년이 넘도록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 시절 문장들은 분명 서툴렀을 것이다.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고, 앞뒤 논리도 맞지 않아 어색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배웠다. 마음이 언어가 되는 과정을, 감정을 종이에 붙잡아 두는 방법을, 그리고 아직 만나지 않은 독자를 상상하며 문장을 정직하게 밀고 나가는 일을.


우정국 2.jpg 상하이우정박물관


가끔 궁금해진다. 이제는 노인이 되었을 그 선생님이 내 편지들을 아직 가지고 있을까.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두 통이 낡은 상자 속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오래전에 버려졌을 지도. 만약 그중 하나라도 다시 읽게 된다면 얼마나 낯설게 느껴질까. 그 문장을 쓰던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사람의 마음은 종이처럼 오래 남지 않는다. 시간이 감정을 데려가 버린다. 남는 것은 다만 문장이라는 형태의 흔적뿐.


IMG_1779.JPG 상하이우정박물관


우정박물관의 오래된 우편함을 바라보다 궁금해졌다. 이 도시를 떠났던 수많은 편지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의 서랍 깊은 곳에 남아 있을까, 아니면 이미 먼지와 함께 사라졌을까. 봉투 속에 접혀 있던 마음이 지금도 같은 모습일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우정국 3.JPG 상하이우정박물관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지 모른다. 마음이 종이보다 먼저 낡아간다는 것을. 봉투 속에 접힌 문장은 시간을 건너가지만, 그 문장을 품었던 감정은 대개 세월을 견디지 못한다.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믿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사라질 걸 알기에 종이 위에 마음을 옮겨 적는다. 오래 남지 않을 순간을 붙들어 두기 위해. 그 순간의 진심만은 영원히 새겨지길 바라면서.


IMG_1786.JPG 상하이우정박물관


영원히 사랑할 거야, 외치는 연인들 역시 그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묻지만 우리는 변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시작한다.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에, 더 조심스럽게. 유한하다는 걸 알기에 더 애절한 마음으로. 어떤 마음은 사라질지라도 끝내 누군가에게 닿는다.




IMG_9153.HEIC 윤소희 작가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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