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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n 15. 2020

달콤 쌉싸름한 여행의 묘미

다크 초콜릿 같은 여행의 빛과 그림자

소셜 미디어(SNS) 상에 보이는 여행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과 환하게 웃는 얼굴뿐이지만, 실제 여행은 그렇게 비단길일 수만은 없다. 


러시아 타간로크의 빅또르냐는 무척 친절했지만, 침대 스프링이 너무 낡아 가운데로 쑥 꺼지는 바람에 잘 때마다 절벽을 기어오르는 악몽에 시달렸다. 


타간로크의 빅또르냐의 집. 마트료시카 인형도 선물 받았다.


모스크바로 숙소를 옮기자 전망 좋은 발코니에 깔끔하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여름에는 온수 급수를 제한하는 정책 때문에 우리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없었다. 거의 찬물이다 싶은 물로 샤워를 한 후 아이가 감기 기운을 보이며 열이 오르기도 했다. 게다가 그 깨끗한 집에서 나는 베드 버그 때문에 며칠을 고생했다. 한동안 내 팔에는 수많은 딱지들이 별처럼 총총 박혀 있었다.
 

카잔에서 하룻밤 머물 때 우리는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겼다는 흥분에 몹시 기뻤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 캐리어를 들고 끙끙대고 올라가 도착한 스튜디오는 몹시 지저분했고 바닥에는 거미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누군가 카드를 도용해 비행기표를 사는데 8백 불을 결제했다는 정보가 날아들기도 했다. 

카잔 숙소 주인 알버트는 몹시 친절했다 (좌) / 카잔에서 독일 전 승리 (우)


프라하의 미샤의 숙소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쓰던 낡은 타이프라이터와 수많은 책들로 마치 동유럽의 작가가 된 듯한 분위기에 젖을 수 있었지만, 낡은 세탁기가 말썽이었다. 잘 돌아가다 탈수 부분에서 멈추기 일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손으로 힘겹게 짜야했다.  


프라하 미샤의 숙소


플리트비체까지 10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고, 버스 정류장은 겨우 7백 미터밖에 되지 않는다는 정보만 믿고 덜컥 예약을 했던 마리아나의 집. 문제는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리 버스를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내버스가 없어 몇 시간에 한 대씩 지나가는 시외버스를 세워 타야 했던 것이다.  


플리트비체 마리아나의 집. 마당에서 그녀의 아이들과 아이들이 축구를 했다. 마침 월드컵 기간.


화려한 사진만 난무하는 SNS 상에서 여행 뒤에 숨겨진 그림자를 읽어내긴 어렵다. 하지만 여행의 그림자가 싫은 건 아니다. 여행에서 그런 ‘고생’의 요소가 사실은 다크 초콜릿에서 쓴맛을 느끼게 하는 카카오 성분 같은 것일 테니. 카카오 함량이 50% 이상은 되어야 (나머지는 거의 설탕) 달콤함과 쌉싸름한 쓴맛이 조화가 되어 다크 초콜릿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설탕처럼 안락하고 편안함만 추구하자면 집에서 쉬는 게 낫지 뭐하러 여행을 떠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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