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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n 12. 2020

스마트폰 없이 도대체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소셜 미디어 (SNS)와 사랑

몇 날 며칠을 공들여 적은 편지지에 향수 한 방울 뿌려 편지 봉투에 넣고 우체통에 넣어, 답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안타까운 사랑도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사랑하는 연인을 몇 시간이고 기다리며 그리움을 키워가는 사랑도 

사랑하는 그녀의 집 앞에서, 또는 창문 밖에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녀를 마냥 기다리며 애태우는 사랑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 연구에서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분석을 실행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한 것이다. 트위터를 통해 연인이 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서로 간에 224개의 메시지를 보냈고, 페이스북의 경우는 70개의 메시지를 보낸 후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7,80년대에 데이트를 했던 세대에서 공식 커플이 되는데 평균 두 달 반이 걸렸다고 하니, 과학기술이 가져다준 SNS는 남녀를 연인관계로 이어주는 새로운 채널을 열어 주고 속도 또한 줄여준 셈이다. 



"224번 트위터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 제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았습니다."하고 대답하게 만드는 연구의 디자인도 우습지만, 트위터 그래프 바가 이메일 바보다 7,8 배 높아, 트위터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이메일을 통해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7,8 배 정도 더 오래 걸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그려진 그래프를 보니 더 웃음이 난다. 이메일 한 통 쓸 시간에 트위터 메시지를 열 번, 스무 번 교환도 가능한 게 아닌가 싶어서. 


다양해진 소통 채널로 달라진 건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기보다는 사랑 표현 방식 변화에 따른 '사랑의 빛깔'이 아닐까?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과 속도에 영향을 안 끼친다는 주장은 절대 아니다.


나는 당신의 글과 사랑에 빠졌어요.


저는 오랫동안 그 누구와도, 당신과 그랬던 것처럼 격렬하게 감정을 나눠본 적이 없어요. 이런 식의 감정교류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저 스스로도 놀랐답니다. 당신에게 보낸 이메일들에서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에미다운 에미가 될 수 있었어요. … 그냥 거리낌 없이 저돌적으로 글을 쓰는 거죠.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 그래서 당신은 포기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 문득 세상에 그런 남자가 실제로 있을 수 있을까, 상상하게 하는 그런 남자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 저는 당신이 필요해요!


그 여자는 나를 휘저어 놓고, 들뜨게 한다. 종종 그 여자를 달로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꼭 그 마음만큼 그 여자를 달에서 도로 데려오고 싶어 진다. 나한테는 이 지상에서 그 여자가 필요하다. 그 여자는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고 영리하며 재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여자가 온라인에서지만 내 곁에 있다는 점이다.

-다니엘 글라타우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중

다니엘 글라타우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주소를 잘못 적어 잘못 들어간 이메일을 계기로 두 남녀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오로지 이메일 전문으로만 보여주는 소설을  몇 년 전에 읽었다. 얼굴을 볼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오직 상대방의 문장만을 읽으며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상대방을 그려내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편지처럼 오래 기다리거나 지체할 필요 없이, 실시간으로 소통도 가능하고, 원할 때는 편지처럼 오래 묵혀 두었다 답을 할 수도 있다. 보거나 들을 수 없으니, 문장에서 상대방을 읽어내려고 더 깊은 집중을 하게 되고. 이메일이라는 소통 방식의 특성에 따라 두 남녀는 서로를 이상화하며, 실제로 가까워져서 상처 받거나 실망하는 위험은 피하면서도, 서로의 삶의 구멍을 메워주며 연애 초기의 설레고 흥분되는 감정을 충만하게 느낀다. 


흠 많은 피조물의 하나로 당신을 볼 수 있어야 비로소, 당신이 제 아내와 얼굴을 마주해야 비로소, 당신의 우월한 힘이 사라집니다. 환상의 사랑, 끊임없이 고조되는 감정,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그리움, 가라앉을 줄 모르는 열정,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의 만남이라는 하나의 진짜 목표, 지고의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목표 실현은 번번이 미뤄지고 만남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 아내는 당신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 다니엘 글라타우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중 에미의 남편이 쓴 이메일 중


이메일이라는 소통 방식이 두 주인공의 사랑에 부여해준 환상과 그리움 그리고 열정은 다른 소통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빛깔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영국의 연구 결과에 빠져 있는 카카오 톡이나 에버노트는 어떨까? 카톡으로 소통하는, 그리고 에버노트로 소통하는 사랑의 빛깔은 또 어떤 빛깔일까? 


각종 소셜 미디어 (SNS)


전화와 문자, 페이스 북과 트위터, 이메일, 카톡과 에버노트까지. 사랑하는 연인과의 대부분의 소통을 연결시켜 주는 휴대폰의 지위는 점점 높아지고, 스마트폰이 사랑에 휘두르는 파워는 점점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갑자기 우스운 질문이 떠오른다. 

스마트폰 없이 도대체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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