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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01. 2020

벌은 꽃보다 고기를 좋아해

작은 벌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프랑스에서 한 달 머물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벌이 꽃보다 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야외 테이블에서 고기 요리나 햄 종류를 주문할 때마다 달려드는 벌 때문에 애를 먹었다. 햄이나 고기 조각을 들고 날아가는 벌의 모습이 처음에는 충격적이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어느 저녁 막내 아이가 오랜만에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 스테이크를 시켰다. 금세 냄새를 맡은 벌이 날아와 스테이크를 노리며 분주하게 날아다닌다. 벌이 무서워 스테이크에는 손도 못 대는 막내 아이를 위해, 물컵으로 벌을 잠시 가둬 두었다.


벌아, 잠시만 그 안에 있어! 식사가 끝나면 놓아줄게.


스테이크 주위를 윙윙거리며 맴도는 벌을 잠시 컵 안에 가둬 두었다


식사하는 내내 이번에는 큰 아이가 안절부절못한다. 벌이 그 안에 갇혀 답답해하다 죽을지도 모른다면서 빨리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 우리 중에 유일하게 벌에 쏘여 본 사람은 큰 아이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을 놓아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큰 아이라니.


아주 작은 벌 하나일 지라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 고통에 공감할 줄 안다는 것은 몹시 중요한 자질이다. 컵에 갇혀 답답해하는 벌을 놓아주고 그 생명을 구해주는 일은 몹시 귀한 일이지만, 그 어떤 생명도 사람보다 중요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 마음은 참 예쁜 마음이야. 하지만 지금 벌 때문에 벌벌 떨며 저녁을 못 먹고 있는 네 동생도 생각해줘야 하지 않을까?”

 

식사가 끝나자마자 벌을 풀어주는 대신, 계산할 때 웨이터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우리가 자리를 떠난 뒤 잊지 말고 벌을 풀어달라고. 벌을 두려워하는 막내를 위한 배려다. 그 말을 들은 웨이터는 컵에 갇힌 벌을 발견하고 웃더니 우리에게 윙크를 살짝 한다.



**초식성 벌을 제외한 벌들을 wasp (땅벌, 말벌)라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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