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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n 18. 2020

"당신은 글을 쓰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군요"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 폴 세르주 카콩

진 세버그는 실종된 지 열흘 만에 자동차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이틀 후, 전남편 로맹 가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아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FBI에 물었다.  

그리고 1년여 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니나를 어머니로, 진 세버그를 아내로 두지 않은 사람은 새벽을 약속하는 세상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거짓된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을 읽고 그 어머니의 역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진 세버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알고 있는 그 로맹 가리일 수 없었으리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 (출처: 네이버)


로맹 가리를 좋아하지만, 진 세버그를 알게 되니 그녀에게 더 매료되고 말았다. 


흑인을 위한 운동을 지지했기에 백인들에게서도 흑인들에게서도 ‘창녀’ 소리를 들었던, 진 세버그. 

진정 ‘손해 본다는 걸 알면서도 순수’했던,  

끝까지 순수했던. 

그렇기에 그녀가 던진 한 마디가 진심으로 아프다.


당신은 글을 쓰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군요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 폴 세르주 카콩


그녀는 자신을 백인 창녀라고, 흑인들의 창녀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순간 우리가 처한 입장에 따라 우리는 백인 창녀 또는 흑인 창녀일 뿐이었다. 우리를 선택하지 않은 진영에는 영원한 창녀인 것이다. 
당시 흑인과 백인은 흑인을 위한 운동을 지지하는 백인 여배우들을 창녀로 취급했다.  … 그녀는 이런 익명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마. 넌 백인 창녀야.” 누가 이런 전화를 기획하고, 그녀의 자동차 바퀴에서 나사를 빼놓고, 그녀의 고양이들에게 독을 먹였는지는 알 수 없다. 흑인 행동주의자들? 자말의 부인? 대간첩 활동인 ‘코인텔프로’ 작전으로 그녀를 죽이기로 결정한 FBI? 아마 이 셋 모두일 것이다.
“당신은 글을 쓰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군요.” (진 세버그) 
“세버그의 영향으로 나는 순수함을 약간 되찾을 때가 있었다. 손해 본다는 걸 알면서도 순수해야 한다. 이 말은 인간을 계속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실망하고 배반당하고 조롱당하는 것보다는 그들을 계속 믿고 신뢰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로맹 가리) 
니나를 어머니로, 진 세버그를 아내로 두지 않은 사람은 새벽을 약속하는 세상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거짓된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가리가 했듯이 포옹으로 몸을, 키스로 입을 채워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에 대해 진정으로 말하지 못한다. 사막을 사랑하고, 산을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은, 대양을 형제로 여겨보지 않은 사람은 어느 아침의 아름다움을, 여인의 빛을, 광대의 필사적인 웃음을 찾으러 지평선 너머로 가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꺼져버리라고 말하지 못한다. 
어느 신문의 편집장은 가리의 무덤에 “프랑스 작가”라고 쓰더라도 그가 이민자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중요한 일인 양 환기했다. 신분, 태생…… 이런 문제가 끝까지 그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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