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Jun 13. 2020

한 번 본 책은 책이 아니다?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0여 년 만에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다시 읽었다. 


'두 번 본 것'만이 영화다. 한 번 보고 만 것은 영화가 아니다. 그건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목격하게 된 교통사고와 같은 것.
-장정일 <생각> 중


어쩌면 한 번 읽은 책은 장정일의 말처럼 그저 스치면서 본 교통사고 같은 것일지 모른다. 봤다고 믿고 있지만 진짜 제대로 본 것은 아닌.


프롬이 말하는 사랑보다는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 버리는’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던 젊은 시절에 읽었을 때보다는 좀 더 많이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고 할까. 


<사랑의 기술> - 에레히 프롬


"헤니가 자살을 한 날은 1952년 6월 4일이었고, 프롬이 애니스*와 결혼을 한 날은 1953년 12월 18일이었다. 그리고 1956년 <사랑의 기술>이 세상에 나왔다. … 가까운 이의 자살을 겪은 사람이라면 그런 일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남기는지 잘 알 것이다. … 그러니 애니스와, 그녀를 향한 프롬의 사랑이 그를 기적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분명하다.”
  -옌스 푀르스터 <에리히 프롬> 중 



<에리히 프롬> - 옌스 푀르스터가 에리히 프롬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여행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살아나게 하고 성장시킨다는 걸 프롬은 애니스*와의 사랑에서 직접 경험했던 것이다. 역시 사랑은 하룻밤에 눈이 멀어 빠져드는 것이 아니다. 프롬의 말처럼 훈련과 집중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사랑하는 책 역시 한 번 읽고 내팽개쳐서는 안 되는 일이고.

처음 읽었던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후 읽었던 책들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된 문장들이 종종 보여 낯설거나 새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호구조사를 끝냈다 해도 상대를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두 번째 만남에서는 분명 다른 종류의 앎과 이해가 있다.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아 좋은 책도 다시 읽을 엄두를 잘 못 내고 있었는데, 사랑하는 책들을 종종 다시 만나야겠다.


(*프롬의 세 번째 부인, 프롬은 그녀의 네 번째 남편)



대부분의 어머니가 ‘젖’을 줄 수 있으나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꿀을 줄 수 있으려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 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사랑, 기쁨, 행복이 무엇인가를 경험하게 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전도력이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만일 그가 오직 다른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전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론을 쓰고도 악몽 같은 짝사랑에 빠져 늘 불운했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