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앞의 삶> - 복거일
기억을 참 많이도 잃어버렸다.
어느 순간, 기억과 함께 내 삶도 상당 부분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 말미를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
원시적인 무엇이, 뜨겁고 강렬한 무엇이, 내 살을 가득 채웠다.
돈 많고 나이 많은 중국인에게 자신의 '몸뚱이를 파는' 이야기다.
자신의 뇌를 그 중국인의 몸에 이식하고, 그 중국인의 뇌를 자신의 몸에 이식하는 방법으로.
하루아침에 수십 년 늙어버린 낯선 몸에 자기 삶의 기억을 가진 뇌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뇌를 바꾸는 수술이 된다 하더라도, 정말 주인공처럼 느낄지 확인해 볼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소설이 한없이 고마웠다.
뇌가, 그리고 기억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 줘서.
기억이 사라지건 말건, 뜨겁게 몸으로 살아낼 삶이 남아있다고 말해 줘서.
가슴은 아직도 애달프게 찾으려 한다. 그러나 발길은 묻는다. ‘어디로?’
-로버트 프로스트의 <내키지 않음> 중
이상한 건 사람들이, 물론 저도 포함해서요, 뇌에다 그렇게 큰 의미를 둔다는 것입네다. 어저께 문득 깨달았는데요, 저는 처음부터 제가 제 뇌와 함께 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가장 선명한 기억들은 우리 몸이 직접 경험한 것의 기억이디요.
중고차를 물려받듯이 사람 몸을 물려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네다. 사람의 몸은 나름이 내력과 기억이 있고 그것을 물려받은 사람은 그런 내력과 기억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몸속 깊은 곳에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욕망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이끄는 것은 내 뇌가 아니라 내가 물려받은 늙은 몸인 것도 같았다. 지금 리진효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의 98퍼센트나 되는 그 늙은 몸이 나름의 논리에 따라 나를 이끌고 내 뇌는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