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어있는 無, 그 빈 틈을 노리는 惡

<인간 실격 > - 다자이 오사무

by 윤소희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오사무.jpg 다자이 오사무


여러 번 자살을 기도하다 결국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를 지배하던 감정은

‘쓸쓸함’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그저 남들보다 예민하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읽는다는 것, 그리고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것을 추구했다는 것이 죄인가?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징으로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 즉 공감 능력이 없다는 것을 꼽는다.

하지만 정확히 다른 극단에 있던 요조 역시 ‘인간 실격’자가 되어, 타인에게 ‘악(?)’을 행하게 된다.

- 함께 자살 기도하다 혼자 살아 남아 자살 방조자가 된다든지, 여러 여자들의 마음을 가져간 뒤 끝까지 책임을 지지 못한다든지, 내연의 처가 강간을 당하는 걸 보고도 방치한다든지 등등


왜?


그 답마저 소설 안에 있는 게 아닐까.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쓸쓸함”이라 표현한

요조의 공허함, 비어 있음, 무(無)

그 비어 있음이 ‘순수함’으로 머물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비어 있는 틈을 노리는 악(惡)에게는 무방비 상태였다는 것이 죄라면 죄일까.


아… 이런 결론은 너무 쓸쓸하다.


인간실격.jpg <인간 실격 > - 다자이 오사무


피의 무게랄까 생명의 깊은 맛이랄까, 그런 충실감이 전혀 없는, 새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깃털처럼 가벼운, 그냥 하얀 종이 한 장처럼 그렇게 웃고 있다.


“쓸쓸해.” 저는 여자들의 천 마디, 만 마디 신세 한탄보다도 그 한마디 중얼거림에 더 공감이 갈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 여자들한테서 끝내 한 번도 그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은 괴상하고도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모두를 무서워하는지. 무서워하면 할수록 남들은 나를 좋아해 주고, 남들이 나를 좋아해 주면 좋아해 줄수록 나는 두려워지고 모두한테서 멀어져야만 하는, 이 불행한 제 기벽을 시게코한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었습니다.


죽고 싶다. 숫제 죽고 싶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무슨 짓을 해도, 무얼 해도 잘못될 뿐이다. 창피에 창피를 더할 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아오바 폭포에 가겠다니, 나로서는 바랄 수도 없는 일이야. 그저 추잡한 죄에 한심한 죄가 겹쳐지고, 고뇌가 증폭하고 격렬해질 뿐이야. 죽고 싶어. 죽지 않으면 안 돼.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죄의 씨앗이야, 라는 등 외곬으로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집과 약국 사이를 반미치광이처럼 왕복할 뿐이었습니다.